[이삭칼럼] 수십 년을 예배당 없이 살지 않았갔소!


이번 주일에 예배당에 가지 못했습니다.
코로나 사태를 핑계로 교회 모임을 제한했기 때문입니다.



“우린 몇십 년 동안 예배당에 가지 못했습니다.
예배당에 가지 못하고 길을 걸으면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합니다.
음악 없이 주님을 찬양합니다.
십자가에 아들을 못 박아 죽여야 했던 그 하나님을 높이는 마음만 올려 드립니다.
성경을 옆에 끼고 예배당을 갔다는 할머니의 옛 이야기는 뇌리에서 서서히 사라져 갑니다.
할아버지가 ‘예배당 한 번 못 가 보고 죽는구나’라고 하시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그러나 그것도 이젠 희미해진 옛날 이야기일 뿐입니다.
꼭 쓰고 다니시던 모자를 저에게 주시면서 ‘이게 내가 줄 유일한 선물이구나!’ 하셨습니다.
‘이 케케묵은 냄새 나는 모자가 뭘 그리!’ 하고 내팽개쳤습니다.
그러다 뭘까 생각하고는 모자 안을 들여다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비닐 종이에 쌓인 글귀가 보였습니다.
성경 말씀을 손으로 쓴 것이었습니다.
무서워서 감추어 두었더랬는데 지금은 어디에 두었는지 잊고 말았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주일에 가 보지 못해 안쓰러워 하시던 그 예배당.
잊혀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목사님… 그 손 좀…
예배당에 가서 기도할 때 모으던 그 손 좀 만져 보자요!
축도할 때 들었던 그 손 좀 만져 보자요!
그 눈, 하늘을 향하여 쳐다보며 우시던, 그 눈 좀 보자요!
우린 예배당 없이 살지 않았갔소!”

예배당 문고리를 사진으로라도 찍어다 달라던, 아주 조그만 목소리로 말씀하시던 그분들은 다 떠났습니다. 이젠 노인이 된 내가 그들이 가 보지 못한 예배당을 지어 볼 수 있겠는지….

강화도에 북한을 바라보며 세워진 한 교회의 목사님이 종탑을 수리해야 한다며 카톡을 보내 오셨습니다. 마음이 찡해져서 수리하는 종탑을 보러 갑니다. 예배당의 종탑. 청소년 시절 목사의 아들이었던 저는 예배당의 종을 치고는 했는데….

그 예배당에 저는 가지 못했습니다. 공산당 때문에가 아니고 코로나 때문에 아내와 함께 길고 긴 기도를 주일, 숙소에서 드려야 했습니다. 헌금은 방문하신 이웃 목사님께 드렸습니다. 그러고는 건너다 보이는 북한 땅을 향해 걷고 또 걷습니다. 주일 예배당에 가지 못한 저는 마음에 그리면서 하나님께 아룁니다.

“주일인데 예배당에 못 갔습니다. 성도들이 모이지도 못했습니다. 저 북한 땅의 성도들은 몇십 년째 예배당에 못 갔대요. 목사님을 본 적이 없어 제 얼굴을 쓰다듬던 그 할머니는 주님 앞에 계시겠지요?”

북한 땅을 바라보며 벼가 익어가는 논을 한 바퀴 돌며 또 아룁니다.

“하나님, 예배당에 못 갔어요. 그래서 성도들을 못 봤어요. 할머니들의 찬송 소리도 못 들었고요. 목사님 설교도 못 들었어요. 헌금은 그냥 목사님께 드렸어요. 목사님이 축도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어요. 아무도 없겠지만 오늘 예배당에 살짝 가서 그냥 앉아 있다 돌아올게요. 하나님, 나는 예배당에를 갈 수 있지만 저 건너편에는 예배당이 없어진 지 수십 년이에요. 회복하실 날이 언제예요?”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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