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칼럼] 하나님이라 불러본 기쁨을 아십니까?

 

저는 북한에서 태어나 남한에서 자랐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평양에서 신학교를 다니시던 시절, 신학생들이 하나 둘 행방불명 되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신학교에서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던 아버지는 공산당을 피해 1947년 어머니와 만 두 살이었던 저를 데리고 서울로 내려오셨습니다. 남한에서도 목회자인 아버지를 따라 충청도와 서울로 이사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미국 시민권을 가져야 북한선교를 할 수 있다는 어머니의 뜻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북한선교를 하기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간 것입니다. 제가 일생 동안 걸어온 길은 모두 주님과 관계된 일이었습니다. 돈을 번 일도 선교를 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고, 중국과 북한을 드나들며 하나님이 제게 맡기신 일을 감당했습니다.

 

저는 북한성도들이 기도하기 위해 모은 손을 감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몰래 숨어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주여~” 라는 소리도 입밖에 내지 못했습니다. 공산당 노래의 멜로디에 가사를 바꾸어 찬양을 부르며 눈물 흘리는 성도를 알고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마룻바닥이 파일 정도로 기도한 성도를 만났습니다. 성찬식에 쓸 잔이 없어서 손바닥을 동그랗게 웅크려 잔을 대신하는 성도를 알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얀 장갑이나 가운, 예배당, 정해진 예배시간도 없었습니다.

 

가슴 깊은 그곳에서 나오는 소리… “주님 회복하실 날이 언제입니까?”라고 하는 기도를 저는 들었습니다. 성경을 손에 쥐어만 보겠노라며, “이 성경은 가지고 가라요. 나는 못 가지고 가니…”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던 성도의 애절함을 저는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이 애절함을 아십니까?

 

그들 중 청년 한 명이 실수로 “하나님”을 소리 내어 불렀습니다. 비록 작은 목소리였지만 하나님이라고 불러서는 안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은 눈에 눈물을 가득 채우고 저에게 “하나님이라고 불러본 이 기쁨을 아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그 일로 인해 2년 동안 아내와 두 아들, 노모와 함께 교화소에 가야 했습니다.
하나님이라고 불렀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전해지는 종이 한 장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라는 말씀이 인쇄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읽어 내려가다 꺽꺽거리며, 숨을 멈출 듯이 울며 읽어 내려갔습니다. “며… 멸망치 않고 여…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러분은 이렇게 울며 요한복음 3장을 읽어내려 간 적이 있습니까? 저는 그들을 만났고, 보았고, 그들 옆에 있었습니다.

 

“나도 용서받고 천국에… 갈 수 있어?” 라고 묻는 북한 고위 당국자의 말을 들어본 일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한 권의 성경이라도, 한 장의 말씀이라도 전하려 했던 것입니다. 별 가치도 없어 보이는 찢어진 종이 한 장에 인쇄된 그 말씀이 생명을 살린다니… 해어진 종이 한 장, 그저 찢어진 종이에 적힌 말씀이 생명력을 발휘하는 그 힘!
그 말씀은, 살아서 죽은 영혼을 깨워 살리는 힘이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타락한 세대와 세속화된 교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북한 땅도 이 남한 땅에도 하나님의 말씀이라야, 구원의 길이 있습니다. 생명의 말씀 말입니다.

 

여러분과 통일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통일의 목적은 우리의 땅을 되찾는 것이 아닙니다. 선교할 지경을 넓히는 일이기에, 통일에 마음을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할 땅이 북한입니다. 그 땅이 공산주의자들의 손에 얽매인 세월이 너무 길게 느껴집니다. 이제 북한 땅에도 생명을 살리는 말씀이 전해져 살아나는 그 일을 위해 우리는 통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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