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칼럼] 차라리 죽는 것이 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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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 갇힌 성도가 자신이 살아 나가기 위해 다른 지하 성도 한 사람을 고자질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살아남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일이 악화되었습니다. 도리어 고자질한 사람이 억류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병색이 짙어져 추방당했습니다. 대신 감옥에서 고자질 당한 사람을 몰래 도왔던 사람들이 얼마 후에 석방되었습니다.
그것으로 끝났다면 좋았겠지요. 그러나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다른 지하성도를 고자질한 그는 자신이 고발한 성도가 석방되자 또 다른 지하성도들 가정의 정보를 모두 털어놓았습니다. 아마 그렇게 다 털어놓았기에 석방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북한 지하성도들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 성도를 1989년에 만났습니다. 숨죽이면서라도 살아있던 그 분과 가족은 감옥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십일조를 마음대로 하는 그 날을 기다리던, 자유롭기를 기다리던 그는 이제 수용소에 갇혀 온 가족과 함께 무참히 고문을 당할 것입니다.
어젯밤에 이 소식을 전해준 이도 저 먼 땅에서 소리 내어 울고 있었습니다. 야고보를 죽인 후 유대인들이 좋아하는 걸 보고, 베드로도 죽이려 했던 헤롯의 이야기가 오늘의 북한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우리는 무심한 태도로 듣고 있지는 않은가요?

 

1983년, 저는 중국 가정교회가 걸어온 아픔의 길을 보았습니다. 저는 기도하는 그들의 손에 떨어지던 눈물을 보았습니다. 북한성도의 아픔은 그보다 더 큼에도 우리는 남의 일처럼 바라만 보았습니다. 70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금식도 하는데 뭐…”라며 뒤돌아서서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성도들에게 쌀이나 주는 것으로 대단한 일을 하는 양 의기양양한 태도를 보이곤 합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주님은 그 백성들을 보고 민망히 여기셨건만, 우리는 미안해하지도 않았습니다. 굶주림에 죽어간 350만 명은 부르짖고 있었습니다. 아니 지금 그 가정이 예수의 이름 때문에 끌려가 채찍질을 당하는데, 저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병든 북한의 그 무리들과 밟히고 있는 백성들 그리고 지하 성도들이 있습니다.

 

“하나니~임…
저들을 정녕 버리려 하시나이까?
저 땅을 버리려 하십니까?
말씀하셨잖아요. ‘나는 그 땅을 포기하지 않았다!’라고, ‘그 땅에 내 백성이 살아 있다!’고 하셨잖아요.
제가 잘 못 들었나요? 아니면 하나님이 이제라도 포기하려 하시나이까?
하나님. 차라리 저를 버리십시오.”

 

저는 모세의 마음으로 바울의 심정으로 주님께 아룁니다.
차라리 저를 버리고라도 저들을 살려달라고… 저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이 그 곳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셨다며 그 땅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북한을 떠났다가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다시 돌아가는 저들,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신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 저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저들의 원하는바 용서와 은혜의 소리를 그들에게 듣게 하사 예배할 날을 허락해 주옵소서. 그들은 이 추운 겨울에 이불도 가져갈 수 있도록 허락받지 못하고 끌려갔습니다. 여덟 살 아홉 살 난 딸들과 함께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목 놓아 울어도 소용없는 저들, 차라리 죽음이 더 행복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발로 걷어차는 악한 자들의 채찍질과 저주스러운 욕지거리, 모욕과 학대…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는 당신이 택한 백성의 아픔을 어찌하시렵니까?
성도들로 찬양케 하옵소서. 저들이 부르짖을 때 하나님 들으소서. 엘리야의 하나님.

 

하나님. 종의 기도를 지금까지 들어오심을 인해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오늘 그렇게 고통스럽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성도들을 기억하사 저들을 놓아주옵소서. 아니 하나님 그 땅을 포기하지 마옵소서.
이제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이 내려지지 않음을 아시듯 북녘 땅의 그리고 남녘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을 기억하옵소서.
이제 일어나 행하시옵소서. 한 사람의 기도를 기억하옵소서.

 

무익한 종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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