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의 일입니다. 탈북민 아이들과 캐나다 나이아가라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자살을 세 번이나 기도한 13살짜리 아이가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맞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이 참 아름답네요!” 그런데 마침, 폭포에 있던 어떤 남자는
“야! 여기 장어가 많이 잡히겠네!”라고 소리쳤습니다. 한 아이는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본 반면 다른 어른은 장어 잡기에 아주 좋은 장소라는 사실을 알아낸 것입니다.
함께 사역하던 조선족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얼마나 어려우셨어요!” 1940년대부터 공산당과 문화혁명을 거친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대답이 “이게 다 내 면류관이야”였습니다. 안타깝고 화가 나고 눈물 겹고 죽고 싶은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을 사건을 겪은 분들의 입에서 나온 말. “면류관이야! 난 이 면류관을 놓칠 생각이 없어!” 주님이 밧모섬에 있는 요한에게 빌라델비아 교회 사자에게 분명히 이르라 하신 말씀인 “네가 적은 능력으로도 나를 배신하지 않고 내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는 주님의 음성을 그들은 듣고 있었습니다.
제가 누누이 하는 말입니다만 성경 말씀을 오래 전 이야기로 끝내 버리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으로, 오실 하나님이 내게 이루실 말씀으로 받아 그것으로 인해 기뻐하고 소망할 때 우리는 면류관 같은 복 있는 자리에 있게 됨을 알 수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빼앗는 자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빼앗기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면류관을 소유한 자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면류관을 주실 분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한 눈에 보셔야 합니다. 빼앗는 자가 있습니다. 소유했는데 뺏기는 자가 있습니다. 면류관을 주실 분이 계십니다.
과거 역사 속에서 오늘을 보고 내일을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에 가인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만났습니다. 그가 면류관을 놓칩니다. 사울 왕은 키가 큰 준수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첫 왕으로 뽑혔지만 불행히도 왕권을 내 놓고 맙니다.
조금 더 나가 볼까요? 압살롬! 그는 면류관을 놓칩니다. 다윗의 형들은 어떤가요? 사무엘이 속을 정도로 잘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면류관을 쟁취하지 못합니다. 요셉의 형들도 정말 좋은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면류관을 놓칩니다.
더 안타까운 사람이 있죠? 가롯 유다! 예수님을 가까이 했습니다. 보았습니다. 섬겼습니다. 얼마나 유능했으면 돈을 맡았겠습니까? 그런데 놓친 바 되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내 것 조금 가지려다가 다 놓치고 부부가 함께 죽음의 길로 갔습니다. 순간적으로 놓친 사람이 또 있습니다. 모세의 형!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다시 말해, 성경에는 긍휼을 입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 길을 못 간 사람들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면류관을 빼앗긴 사람들입니다. 바울 사도를 괴롭힌 사람들, 세상에 나가려고 포기한 몇몇 사람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해 주님이 요한에게 주시고 싶은 말씀이 무엇일까요? 작은 능력은 모두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작은 능력을 가지고 배신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배신하는 사람도 있더라는 이야기입니다.
3장 10절에는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라고 합니다.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순간순간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배신하는 자가 되는 것이 우리임을 고백할 필요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빼앗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빼앗기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빼앗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10년 참았다고, 20년 동안 참았다고, 30년 동안 굴 속에서 예배했다고 그것만으로 되지 않는 무엇이 있습니다.
작은 능력을 가지고 끝까지 이기는 자에게 12절에 약속하십니다. “이기는 자는 네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빌라델비아에 가 보신 분들은 이해를 합니다만 기둥들이 남아 있습니다. 아주 큼직해서 무너뜨리려면 폭파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잘 만들어진 기둥이 있는 지방 사람들에게 지금 편지를 쓰십니다. 뭐라고요? 그 기둥같이 되리라고.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을 가까이에서 알던 사람, 바울과 함께한 사람, 그들이 배신합니다. 여러분과 저는 주님 옆에 서 있지 않지만 옆에 있는 듯 믿음을 지키는 한 사람, 하나님 나라를 위해 끝까지 이기는 자가 되어서, 면류관을 놓치지 않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 2020년 8월 30일 북한으로 송출된 <남북연합예배> 이삭 목사 설교로 본회 OKCN 어플이나 유튜브에서 다시 들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