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콤특집 1] 선교사의 눈물, 그리고 회복 (2019.09)

 

 

하나님의 격려로 다시 일어납니다

 

나는 감히 선교사를 꿈꾸지 않았습니다. 나 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부를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선교사가 되려면 하나님의 특별한 지명과 계시를 받고 각별한 영적 능력을 가지고 죽음도 불사하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계속 저를 부르셨습니다. 네가 아니면 누가 낯선 땅에 가겠냐고, 누가 가족과 떨어져서 먼 거리를 여행하며 외로운 밤과 낮을 보내겠냐고 물으셨습니다. 탁월한 능력이나 대단한 지식은 없지만 부나 명예가 인생의 목적이 아닌 사람, 불편한 곳에서 자고 익숙지 않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사람, 또 낯선 언어를 배우며 추위나 더위를 참는 사람,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견디고 인내할 사람이 저라고 하셨습니다. ‘나를 대신하여 가 달라’고 부탁하시는 주님의 친절한 음성을 저는 거부할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주님을 사랑해서 타국에 왔지만 거기서 당하는 수모와 멸시는 결코 녹록지 않았습니다. 사역을 위해 긴 시간 버스와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 엄습하여 밀려오는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마음이 어려웠고, 안전의 위협을 받을 때마다 주님을 원망할 시간도 없이 사역의 흔적을 없애느라 동분서주하기 바빴습니다. 잠자리에 들며, 내일은 고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다짐했던 순간이 많았습니다.
이국 땅에서 자라나는 자녀들과 생활고에 지친 아내에게 오히려 짜증을 내기도 했고, 함께 일하는 현지 일꾼들로부터 배신을 당한 날은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생명과 같이 아끼는 훈련 받은 제자들이 사역지로 돌아간 후에 연락이 끊기면, 복음을 전해준 것이 그들의 목숨을 빼앗은 것 같아, 하던 일을 모두 접고 본국으로 돌아가 숨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나의 모습을 나무라시지 않고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부르며 끝까지 붙드셨습니다. 비록 선교지에서 대단한 이적과 기사를 나타낼 수는 없어도, 나는 이제 주님의 능력 아래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 가난한 자들과 먹고, 병든 자의 환부에 손을 대고 기도하며, 갇힌 자와 그들의 가족을 돌보며, 고아와 과부의 대변인으로 상처받은 자의 어머니가 되어, 내 것을 그들을 위해 나누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롬 10:14-15)” 주의 말씀에 힘을 얻은 저는 이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 24)”

 

 

사명자로 걸어가는 길

 

‘어떻게 선교사로 부름 받으셨나요?’ 라는 질문에 뜻밖에도 앞에 실린 것 같은 내밀한 고백이 답으로 돌아왔다. 선교사는 전사인 줄로만 알았다. 영적 불모지에서 용감무쌍하게 전투를 치르는, 그래서 외롭다거나 지친다거나 무섭다거나 하는 말 따위는 늘어 놓지 않는 하나님의 정예 요원이려니 했다. 그런데 본회 선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의외의 단어들이 귓가를 스쳤다. 눈물, 절망, 고독, 두려움, 고민, 갈등, 탄식, 탈진… 공식적인 사역 보고서가 아닌 개인의 삶으로 마주한 선교사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선교사로 헌신하고 선교사로 살아가며 사역하는 모든 순간이 무엇 하나 쉽지 않고 고통 없이 되는 일도 없었다.
N 선교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던 날을 이렇게 회상한다. “저는 원래 북한을 품고 기도하면서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북한에 들어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교회 개척도 안 하고 있었는데 막상 하나님께서 가라고 말씀하시니까 아이들 교육 걱정이 앞서더군요. 그래서 계속 머뭇거리고 있자니 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 가셨어요. 그러면서 응답을 주시길 ‘내가 너의 아내와 아이들을 네가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한다’고 하셨어요. ‘네. 알았습니다’는 말 외에 할 말이 없었죠.”
목회까지 미루며 북한 선교를 위해 결단을 내렸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순종하기는 어려웠다. 아내와 자녀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선교사 본인이야 확실한 소명이 있어서 간다지만 가족들은 그렇지 않기에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특히 한국과는 다른 선교지 환경으로 인해 아이들이 상처받지는 않을지, 학교 문제를 비롯해서 현지에 적응할 수 있을지에 촉각이 곤두선다.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사실 아이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중국에서 사역하는 M 선교사와 J 선교사는 중국 정부의 감시와 핍박이 온몸을 옥죄는 압박으로 작용한다고 술회한다. 공안이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들이닥쳐 컴퓨터에 있는 자료를 복사해서 가져가고, 어느 날 갑자기 휴대폰에서 수상한 자료가 발견되었다며 70여 일간 감옥에 감금하고,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의 신상을 스캔할 수 있는 QR 코드를 집에 설치하고, 어느 날 갑자기 멀쩡하게 운영하던 사업장을 강제로 폐쇄하고, 또 어느 날 갑자기 조사할 게 있다고 파출소로 불러내니, 웬만한 사람은 평정심을 잃을 만하다.
주변 선교사들이 겪는 어려움을 보는 것 또한 심적인 부담을 가중시킨다. 이제 막 중국 공항에 착륙한 기내로 공안이 들어와서 앉아 있던 선교사를 붙잡아 추방시키는가 하면, 비행기 환승을 기다리던 선교사 가족을 바로 그 자리에서 출국시키는 일까지 발생했다. M과 J 두 선교사 모두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진행된 선교사 추방 행렬로 자신들이 아는 선교사는 이제 한 사람도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

 

그러나 선교사들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한 위로와 안식 그리고 채움과 감사와 회복으로 이어졌다.
A 선교사는 오랜 기간 힘을 다해 일을 했지만 도무지 사역의 열매가 맺히지 않아서 무척 낙심한 상태였다. 마치 로뎀나무 아래 누운 엘리야처럼 그는 ‘하나님, 나 이제 그만 할래요.’는 말을 툭 내뱉았다. 기진맥진한 채로 씨름하던 그에게 한 사람이 찾아왔다. 몇 년 전 성경을 배우고 돌아간 북한 성도가 보낸 사람이었다. 북한에서 나와 처음 만난 그 성도는 주기도문, 사도신경, 십계명을 정확하게 암송하고 있었다. 20년 가까이 사역해 오면서 처음 겪는 일이어서 “아니, 어떻게 조선에 있으면서 이렇게 십계명까지 몽땅 외울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이거이 제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준 OO이 가르쳐 준 기야요”라고 대답했다. 어떤 식으로 가르쳐 줬느냐고 물었더니
“주기도문을 가르쳐 줄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종이에 쓴 것을 제게 보이고 암송하라고 합니다. 제가 금방 따라 외우면 그 종이를 불에 태웁니다. 그런 다음 며칠이 지나서 다시 그 집을 찾아가면 뒤 구절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 나라에 임하옵시며’를 외우게 합니다. 그런 식으로 주기도문을 외우고, 사도신경을 외우고, 십계명을 외웠습니다. 이제 더 깊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라고 여기로 보낸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자신에게 복음을 전한 일꾼이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도와줬는데 심지어 살림살이까지 나눠줬다고 했다. 그렇게 북한 성도가 몇 년 동안 얼마나 쉬지 않고 기도하고 전도하는지를 소상히 말해주면서 자기가 아는 사람만 28명도 넘게 예수를 믿었다고 전했다.
이 말을 들은 A 선교사는 이렇게 고백했다. “최근 저는 정말 마음도 몸도 지치고 힘들었습니다. 이렇게는 더 이상 어려우니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닌가? 심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OO이 보낸 사람을 통해 거기서 사역하는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아, 내가 힘이 들어 허우적거리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쉬지 않고, 졸지도 않고, 상상도 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행하고 계셨구나!’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입이 천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저 같이 부족한 사람을 하나님이 사용해 주시니 감사하지요. 북한에서 OO이 사역하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이렇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주저 앉아 있는 그때에도 신실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나라를 확장시키고 역사하심으로 귀한 열매들을 맺어 가신다. 그 열매들을 보고 선교사들은 힘을 얻고 회복의 기쁨을 누린다.

 

선교지는 치열한 영적 전투의 현장이 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저항하는 복음이 제한된 지역에서 진리 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선포함으로 견고한 진을 파한 후 하나님의 나라를 굳게 세워야 할 실존하는 싸움의 격전지이기 때문이다. 그 한가운데에 선교사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에 대한 영적, 물리적, 환경적 어려움과 공격들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지금도 복음을 증거하느라 치열한 전쟁터에서 바울과 같이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다짐하며 싸우는 선교사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마다 보냄 받은 땅에서 모든 민족이 주께로 돌아오는 그 영광의 열매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며 기뻐하는 은택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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