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오래지 않아 문을 여실 것입니다
“지금 북한에 예수 믿는 사람이 얼마나 퍼져가는지 몰라요. 아니, 북한 내부가 믿음으로 들끓어요! 우리가 인간적인 생각으로 재단하는 것일 뿐, 북한 지역 지역마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십니다. 제가 북한에 드나들기 시작했던 20~30년 전보다 예수 믿는 사람이 10배는 늘었다고 봅니다.”
북한 성도들에게 선생님으로 불리는, 30년 넘게 북한 선교를 감당해 온 베테랑 사역자가 들려준 말이다. 그는 불과 며칠 전에도 북한 내부에 있는 성도들과 연락하며 믿는 자들의 상황을 확인했다며 확신에 찬 어조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분들이 제일 갈급해하고 가장 절실히 원하는 게 뭔지 압니까? 바로 성경 공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싶은 열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야말로 들끓습니다. 통화를 하면 ‘선생님 빨리 만나면 좋겠습니다. 선생님과 만나서 공부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빠트리지 않습니다. 그래도 저는 일절 없습니다. ‘너희는 통일된 다음에 쓰임받을 사람들이니까 섣불리 행동하면 안 돼. 다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갈 거야?’라고 뜯어말립니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것도 절대 못하게 합니다. 누가 누구인지 서로 몰라야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같이 모여서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싶습니다.’라며 통사정을 해도 단칼에 거절합니다. ‘아니야, 너희는 살아남아야 돼!’라며 제지합니다. 이미 복음을 전하다가 보위부에, 정치범수용소에 끌려들어가 죽은 성도들이 여럿입니다. 또 다시 잃을 수는 없습니다.”
김 사역자는 순교한 성도들이 생각나는지 어두워진 얼굴을 아래로 떨구었다. 잠시 침묵에 잠겼던 그가 고개를 들고 입술을 다시 움직였다.
“누구나 다 가족이 있잖습니까? 저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처음에는 네 부인부터 전도해라. 남편부터 전도해라. 자식들부터 기도해 줘라. 그리고 그 다음에 부모 형제 처갓집 시집에 전도해라. 그렇게 연결 연결해서 퍼트려라. 아무리 가까워도 친구와는 예배드리지 말아라. 너희 식구끼리 이불 뒤집어쓰고 기도해라. 내가 너희 붙들고 이불 속에서 기도한 것처럼 해라.’ 교회라는 게 뭡니까?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잖습니까? 한 가정 한 가정이 한 교회라고 봐야겠죠. 저는 지금 그런 교회들이 북한에 생겨나고 번져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신자 한 사람을 단순히 한 명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다. 북한에 믿는 사람 한 사람이 생기면, 전도를 통해 그 성도의 가족이 교회가 되고, 그런 가족과 가족들이 연결되어 북한 전역이 교회로 뒤덮이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는 증언이다. 사역자는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하려는 듯 두 가지 사례를 들려주었다.
북한 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가는 것이 우선입니다
“설 즈음이었나? 저와 계속 연락하던 성도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연호를 찾았습니다.’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목소리였습니다. 저는 연호라는 말에 너무 놀라 하마터면 수화기를 떨어뜨릴 뻔했습니다.
연호는 제가 예전에 중국에서 훈련했던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근 10년간 소식을 듣지 못해 애태우다가 이제는 기억에서도 희미해지던 차였습니다. ‘선생님, 꼬마였던 연호 딸이 벌써 시집 갈 나이가 됐다고 합니다.’ ‘그렇게 컸나? 그 애 이름을 내가 지어줬는데. 그래, 어떻게 살고 있던가?’ ‘10년이 지났는데도 믿음이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을 무척 보고 싶어합니다. 선생님 이야기를 꺼내니까 눈물을 주르르 흘렸습니다.’ 저에게서 훈련받은 북한 성도들이 다 그렇지만 특별히 연호는 정말 믿음이 좋았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말하냐면 연호가 중국에 있을 때 어느 목사님이 한국에 갈 수 있게 도와주고 정착에 필요한 것도 전적으로 지원해 주겠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저한테 자기가 한국에 가도 되느냐고 물어보더군요. 저는 기회가 왔을 때 잡으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런데 연호가 다시 저를 찾아와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본인은 북한 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북한에 들어가야겠으니 한국에 안 가는 게 맞을 것 같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제 앞에 무릎을 꿇고 제 손을 자기 머리에 얹으면서, 자기가 북한에 가서도 믿음을 잃지 않도록 기도를 해 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고 얼마 안 있다가 자기 발로 북한에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 믿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니 너무나 고맙고 얼마나 마음이 뿌듯하던지요. 저는 당장이라도 연호와 직접 통화하고 싶었지만 안전이 우선이기에 그저 소식을 전해듣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안 있다가 또 다른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10년 만에 북한 성도들과 연결되었습니다
“‘정 선생님이십니까? 연호를 통해 연락드립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웬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누구지? 보위부인가?’ 분별하려고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생전 처음 듣는 음성이었습니다.
‘연호가 누구요? 어떻게 생긴 사람인데요?’ 저는 짐짓 모르는 척 딴청을 피웠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행여라도 말이 잘못 튀어나와 꼬투리가 잡히면 큰일이기에 속이 타들어갔습니다. ‘눈이 나빠서 안경을 쓰지 않습니까? 그리고 혼기가 찬 딸이 하나 있는데 이름이 성민입니다.’ 말하는 품새로는 연호를 아는 것 같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저는 심드렁하게 다음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처남 이름이 뭐예요? 장인 장모가 생존해 계시던가요? 어디에 사시죠? 그분들 성함은 어떻게 되시고요?’ 점점 범위를 넓혀서 질문을 하였는데도, 다 정확하게 답을 내놓았습니다. 그 집 처남은 물론 장인 장모까지 제가 직접 훈련을 했기에 어느 정도는 사정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시름을 놓고, 제 번호를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연호와 한 동네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연호가 선생님 제자인지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서로 비밀로 하니까요. 그런데 같은 동네이고 자주 만나다 보니 어느 날은 저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혹시 정 선생님이라고 중국에 있을 때 들어본 적이 없어?’라고요. 갑자기 연호의 눈이 커지더니 ‘대홍이가 너였어?’라고 되묻더군요. 그래서 알게 되었습니다. 한참을 형제가 상봉한 것처럼 서로를 부퉁켜 안고 울었습니다. 그러면서 본인은 선생님과 직접 전화를 못하지만 승호가 선생님 번호를 알고 있으니 연락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데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30년 20년 10년 전에 훈련받고 북한에 돌아간 성도들이 그 숱한 세월에도 굳건히 믿음을 지키면서 건재해 있음에 대한 감격, 그리고 우연한 계기로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어 하나님 안에서 위로받은 것에 대한 감사함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판단을 뛰어넘어 북한 안에 이미 믿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공부를 하고 싶어하고, 실제로 성경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들끓고 있습니다. 북한의 문이 열렸을 때 그들과 뜨겁게 하나님을 예배할 날을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