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셨습니까?” “편안하겠어? 잘 알잖아.” 인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말투였다. 퉁명스러운 할머니의 첫 마디에 선교사는 적잖이 당황했다. ‘나한테 뭐 서운한 게 있나?’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치를 살피던 선교사는 슬슬 부아가 났다. 자그마치 2년 반이나 요청하는 물건을 꼬박꼬박 다 해 주었는데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언제 가십니까?” “내일 저녁. 그런데 마지막으로 줄 게 있어.”
할머니는 허리춤에서 종이를 꺼내 들고 방바닥에 바짝 엎드려서는 무언가를 거침없이 써 내려갔다. 선교사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흘끔 흘끔 곁눈질로 내려다보니 ‘1번 김○○ 32세 2번 박○○ 68세’ 등 이름과 나이, 주소와 직업을 적는 게 보였다. 42번까지 쓴 종이를 선교사에게 내밀며 할머니는 쏘아붙이듯 말했다.
“여태까지 나한테 준 거 나 혼자 안 먹었어. 이게 열매야.” “이게 뭡니까?” “성도들 명단.”
할머니는 그간 다양한 품목의 물건을 선교사에게 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흑백 중고 텔레비전부터 재봉틀, 자전거, 하다못해 아기 기저귀와 장난감, 그림책까지,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여러 가지의 것들을 요구했다. 물자가 부족한 북한의 사정을 생각하면 한편으론 이해가 갔지만 그래도 너무 많은 것들을 가져가니 선교사는 의심의 눈초리로 볼 수밖에 없었다. 가끔 선교사가 “이걸로 뭐 하시게요?”라고 물어보아도 할머니는 “다 쓸 데가 있어.”라며 말을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 모든 것이 전도에 필요한 도구들이었다. 할머니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나눠주며 하나님을 전해 2년 반 만에 42명의 생명을 얻은 것이었다.
“전도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한 영혼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북한에서 42명이 복음을 받았다는 사실이 놀라워 선교사는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피죽도 못 먹은 얼굴이었지. 새댁이 배는 불렀는데 너무 안됐어. 그래서 불렀지….” 특유의 무뚝뚝한 목소리로 할머니가 새댁 성도의 이야기를 꺼냈다.
“‘뭐 먹었어?’ ‘예.’ 새댁에게 물으니 힘없이 대답해. 거짓말이지. 집에 데려 가서 하얀 쌀밥을 차려 주니까 못 먹고 내 얼굴만 쳐다봐. 남편도 시댁도 친정도 능력이 없어서 못 주는 밥을 길 건너 사는 할머니가 해 주니까. ‘먹어.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위해서.’
그랬더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 먹다가 울다가 그래. ‘이거 신어. 안 추워.’ 밥 공기를 비운 새댁 손에 따뜻한 양말 한 켤레 들려서 돌려보냈지. 그러고 며칠이 지나서 또 불러다가 밥 한 그릇 먹이고 내의 한 벌 주고. 그게 세 번째 반복되니까 나한테 물어. ‘왜 오마니는 저에게 잘해 주십니까? 신랑도 시어머니도 친정어머니도 관심도 없고 못 해 주는데…’ ‘그분이 사랑하시니까.’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을 안 써. 처음 듣는 말이라 그런지 한참을 생각하더군. ‘저를요?’ ‘그래, 나보다 더 너를 먼저 알고 사랑해 주는 분이 계셔.’ ‘그분이 누군대요?’ ‘있어. 그분이 널 보고 싶어하셔.’ ‘진짜예요?’ ‘그럼. 그분에게 뭐든지 말하면 들어주셔. 만나고 싶어?’ ‘예!!!’ ‘배 아프니까 무릎 꿇지 말고 눈만 감아. 손 이렇게 잡고 따라서 해.’ ‘주님, 만나 주세요.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십니다. 나를 용서하시고 나의 아버지가 되어 주세요. 지금부터 영원히 저와 함께 계셔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나도 그곳에 가고 싶소
“기도할 때 성령님이 오셔서 믿게 하시지.” 할머니는 전도의 과정을 설명하며 잊지 못할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이건 진짜 쉽고 재미있는 일이야.” 선교사는 두 귀를 의심했다. 신앙의 자유가 있는 한국도 아닌, 기독교를 극렬히 박해하는 북한에서 전도가 쉬울 뿐만 아니라 재미있다는 말에 그저 “와” 하고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나온 할머니의 말은 입을 더 벌어지게 만들었다. “이건 그냥 작은 일이야. 우리 애들이 직장에서, 동료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나보다 열매가 더 많아. 생명의 열매. 그게 큰일이지.” “일터에서 말입니까? 위험하지 않습니까?” “아픈 환자 방문해서 주사 놔주는 일을 하는 애가 있는데 하루는 와서 그래. ’어머니, 오늘 두 사람에게 아버지 말을 했습니다. 자꾸 말해야 한다는 마음이 우러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환자인데 주사를 놔주며 슬쩍 말을 흘렸습니다.’”. 할머니는 자식에게 들은 이야기를 선교사에게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죽어도 딴 나라에 가서 살 수 있는데…’ 어머니, 제가 그렇게 말하니까 가늘게 뜨고 있던 환자의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나도 살려 주시오. 당신 사는 데가 어디요?’ ‘여기와는 딴 동네입니다.’ 제가 간단하게 대답하자 환자가 사정했습니다. ‘나도 거기로 데려가 주시오.’ 이제 원래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사실, 저는 하나님을 믿고 삽니다. 하나님께 나의 죄를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죽어도 하늘나라에 가고,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납니다.’
환자는 무슨 말인지 통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풀어서 설명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데, 하나님을 믿고 자기 죄를 회개해야만 우리는 구원받고 죽어서도 영원히 죽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갈 수 있습니다.’ ‘나도 그곳에 가고 싶소’ 저는 노인에게 저를 따라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하게 했습니다.’” “우리 애가 해 준 많은 이야기 중 하나야. 얼마나 전도에 열심인지 2년 반 만에 나를 앞질렀지. 전도하기 참 좋은 것이 환자들과 단둘이서 만나고, 환자들이 아프니까 복음을 잘 받아들여. 우리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집집마다 직장마다 전도하고 있어!” 이 말을 하는 할머니의 얼굴이 천사처럼 환하게 빛났다. 북한 성도들이 성령을 따라 삶의 자리에서 전도의 직무에 최선을 다한다는 사실에 선교사는 가슴이 벅차고 감동이 되어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북한에서 전도를 받고 신자가 된 탈북민 김광석 목사는 북한에서의 전도를 ‘자신의 생명, 존재 자체를 내어주는 행위’라고 했다. 전도자에게 따르는 박해와 고난이 극심함에도 북한 성도들은 자신의 전부를 걸고 이웃과, 동료에게 하나님을 은밀히 전하며 그들을 생명 길로 인도한다. 그렇게 전도된 한 영혼 한 영혼이 모여 북한 지하교회를 이룬다. 목숨을 불사하는 북한 성도들의 전도 이야기가 2026년 새해를 맞는 우리에게도 전도의 열정을 불어넣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생명을 걸고 전도하는 그들처럼, 북한에 문이 열렸을 때 우리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수행하는 특공대로 설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준비되고 훈련되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