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모퉁이돌선교회가 시작되었다. 지난 40년간 본회가 지나온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었다. 40주년을 기해 모퉁이돌선교회에 있어서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던 사역들 중에서 매달 하나씩을 선정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귀하고 놀라운 은혜를 돌아보며 앞으로를 준비함에 있어 발판을 삼고자 한다. 이달에는 북한에 지하교회가 존재함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던, 백두산 자락에서 예배하는 스물일곱 명의 성도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산중 비밀 예배 처소를 다녀왔습니다
“살아있습디다.”
“무슨 말씀이신지….”
“예수 믿는 사람이 조선에 있습디다. 여기 증표를 가져왔수다.”
얼마 전 북한에 친척 방문을 하고 귀국한 조선족 사역자는 조심스럽게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이삭 목사에게 내밀었다. 누런 갱지에 검은색으로 쓴 종이에는 스물일곱 명의 이름과 나이가 적혀 있었다.
“이것은…”
사역자의 얼굴을 보며 묻던 이삭 목사는 자신이 생각한 것이 맞다는 사역자의 눈짓 사인을 받는 순간 황급히 종이를 접어 탁자 밑에 감췄다.
“지도자가 기도를 부탁하며 건네 준 전 교인 명단입니다.”
“어떻게 손에 넣었습니까?”
이삭 목사는 탁자 쪽으로 바짝 다가앉으며 물었다.
“백두산 기슭에 난 꽤 험한 길이었는데 한 두세 시간쯤 걸었을라나요? 산속 깊은 곳까지 가니까 웬 움막 하나가 있습디다. 거기에 여자아이가 앉아 있었는데….”
조선족 사역자는 그때가 생생하다는 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믿음을 지키도록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라요
“누구냐! 어떻게 왔어?”
조약돌로 공기 놀이를 하던 여자아이는 낯선 사람을 보고 경계심을 드러내며 물었다.
“안심해. 확인하고 내가 데려온 분이야.”
조선족 사역자와 같이 온 친척이 나서고 나서야 여자아이는 겨우 경계하는 빛을 풀었다. 아이는 곧장 뒤돌아서서 마치 모스 부호를 두드리듯 일정한 리듬의 신호를 움막 안으로 보냈다. 그러자 사람이 나왔다.
“이리로 드시지요.”
그의 손짓을 따라 들어간 움막 내부는 이중 구조로 되어 있었다. 문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예배 처소가 움막 가운데 위치해 있었는데, 그곳을 울타리처럼 뺑 두른 제법 큰 공간을 따로 두어서 바깥에서는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예배 처소에는 열일곱 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누더기 옷에 뼈만 앙상하게 남은 영락없는 거지 꼴이었지만 두 눈만은 총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잠시 후, 거기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일어났다. 손에는 닳고 닳은 성경이 들려 있었다. 그분은 낮은 목소리로 말씀을 전했고, 성경책이나 찬송가가 없는 나머지 성도들은 그 할머니가 하는 말을 놓칠세라 온 신경을 집중했다.
말씀이 끝나자 다같이 찬양을 불렀다. 그런데 소리를 내지 않고 다들 입 모양만 벙긋벙긋했다. 아무리 깊은 산중이어도 만에 하나를 대비해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비록 귀로는 들리는 것이 없지만 백두산 자락에서의 움막 예배는 그 어떤 예배보다 마음을 울렸다.
모든 순서를 마치고 조선족 사역자가 여자아이에게 물었다.
“얘야, 너 소원이 있니?”
“할머니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네다.”
당찬 말투가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사역자는 이번에는 할머니에게로 다가갔다.
“저는 곧 중국으로 돌아갑니다. 저에게 부탁할 것이 있으십니까?”
여든한 살의 할머니는 말 대신 갱지 한 장을 가져다가 자를 대고 펜으로 줄을 쳤다. 그러고는 스물일곱 명 성도의 이름을 칸마다 또박또박 정자로 적었다. 그 옆으로는 나이를 썼는데 이십 대부터 팔십 대까지 연령층이 다양했다.
“이 스물일곱 명을 위해 기도해 주시라요. 오늘까지는 무릎을 꿇어 기도하며 믿음을 지켰는데 내일까지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소. 순교를 당하더라도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라요.”
종이를 받아드는 사역자의 손이 떨렸다. 이 귀한 것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허벅지에 종이를 대고 붕대로 감고 헝겊으로 다시 겹겹이 쌌다. 사역자는 며칠 후 스물일곱 명의 기도 부탁을 마음에 품고 국경을 넘었다.
북한에 예배하는 주의 백성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전하는 사역자의 눈가가 촉촉히 젖었다.
“그분들을 뵙고 중국으로 돌아오기 직전에 백두산 을 갔습니다. 한참을 산을 오르다가 갑자기 소변이 마려워서 인적 없는 숲속을 찾아 들어갔는데 글쎄 한 십여 명 정도가 둘러 앉았던 것 같은 흔적이 풀밭에 남아 있지 뭡니까. 이상한 생각이 들어 주변을 살펴보니, 저쪽 끝에 나무 껍질을 벗겨서 묶어 놓은 십자가가 보였습니다. 예배를 드린 자리가 틀림없었습니다. 저는 성도들이 앉았을 자리 자리마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황급히 자리를 떴습니다. 급하게 나오느라 십자가를 챙겨 오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1987년의 일이다. 당시 북한에 성도가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백두산 자락에서 예배하는 성도들의 명단은 분명한 증거와 확신이 되었다. 이후, 모퉁이돌선교회는 북한 성도들에게 필요한 성경을 보내고 지하교회 성도를 적극 지원하면서 한국 교회에 북한 지하교회를 알리는 역할을 감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