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어두운 그곳에 비친 따뜻한 한 줄기 빛
“연희 언니야, 걱정하지 마. 언니네 아들 중국에서 잘 지내고 있대.”
차가운 감옥 벽에 힘 없이 이마를 기대고 앉아 있던 연희는 아들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여 고개를 들었다.
“우리 아들…? 그게 무슨 말이야?”
애써 놀란 기색을 감추며 연희는 봄이에게 되물었다. 말투는 침착했지만 쿵쾅쿵쾅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를 어쩌지는 못했다.
“아들 잘 지낸다고… 하나님이 언니 아들 잘 돌봐 주고 계신대.”
봄이는 다시 한 번 또렷하게, 그러나 감방 안의 다른 죄수들에게는 들리지 않게 조심하여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나님은 또 무슨 말이야? 하나님이 누군데?”
“언니는 아직 잘 모르지만, 하나님은 언니를 잘 알고 계셔.”
봄이는 수수께끼 같은 말만 쏟아냈다. 연희는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되어 혼란스러웠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나를 아는 어떤 분이 내 아들을 돌봐 준다’는 봄이의 말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들이 잘 있다는 말이 사실이기를 바라는 기대감도 생겼다. 아니, 너무 절박한 나머지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고 싶는 심정이었다.
연희는 두 번째로 강제 북송을 당해 북한 감옥에 갇힌 신세였다. 몇 해 전, 중국에 인신매매로 팔려가 그곳에서 아들을 낳고 살았지만 불법 체류자의 신분을 면할 수 없었다. 결국 국경에 있는 감옥으로 보내져 조사를 받았다. 말이 조사지 실상은 수시로 불려가 보위원들에게 호된 고문과 협박을 받는 과정이었다.
연희는 두 번 북송되었다는 이유로 첫 번째 때보다 더 심한 고초를 겪어야 했다. 정신을 잃을 때까지 맞는 날이 계속되다 보니 몸이 성한 데가 없었다. 그런데 연희에게는 만신창이가 되는 육체의 고통보다 더 큰 마음의 고통이 있었다. 중국에 혼자 남겨진 어린 아들에 대한 근심이었다. 고작 다섯 살밖에 안 된 꼬마가 엄마 없이 어떻게 살 수 있을지 생각만 해도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아들에 대한 걱정은 그녀의 영혼을 철저히 잠식해 나갔다.
아들의 생사 여부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온갖 고문과 노동에 시달리던 그녀의 몸과 마음은 갈수록 시들해졌다. 곧 쓰러져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가 됐지만 연희는 살아서 아들을 다시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버티고 또 버텼다.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아들에게 행여라도 해가 될까 봐, 중국에서 잡힌 순간부터 일절 아들의 존재를 언급하거나 서류에 쓰지 않았다.
그렇게 아들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고 혼자서만 애달아 하던 차에 봄이가 그 ‘아들’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아들의 존재를 어떻게 안 것인지 연희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미심쩍고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연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봄이를 믿어 보기로 했다.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감옥에서 봄이는 연희의 유일한 말벗이 되었다.
전날의 두려움이 기도로 한숨이 찬송으로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무슨 노래야? 참 좋다. 나도 배워 줘라.”
처음 듣는 곡인데도 가락이며 가사가 연희에게 큰 잔향을 남겼다.
“언니, 이거 하나님을 높이는 찬송가야. 따라해 봐.”
연희는 귀를 쫑긋 세웠다.
“내 주는 자비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내 궁핍함을 아시고 늘 채워 주시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연희는 봄이가 부르는 대로 흥얼거렸다. 그런데 찬양을 하면 할수록 연희는 이 노래가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들 걱정 때문에 한 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어미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근심하지 말아라. 내가 함께한다. 나만 따라오너라.’ 하는 따뜻한 위로의 말씀으로 들렸다.
연희와 봄이는 어려운 순간이 올 때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를 부르며 힘을 얻었다. 찬양이 끝나면 봄이는 연희에게 꼭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었다. “옛날 옛날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에 관한 것이었다. 봄이는 창세기부터 알기 쉽게 이야기 형태로 차근차근 성경을 풀어주었다. 오늘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대목을 할 차례였다.
“하루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데려가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셨어. 아브라함은 이삭과 함께 곧장 모리아 산으로 향했지. 산으로 가는 길에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물었어. ‘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나요?’라고. 아브라함은 주님께서 준비해 주실 것이라고만 대답했어.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장소에 이르러 이삭을 꽁꽁 묶고 칼로 내리치려고 했어. 그런데 그 순간, 하나님이 아무것도 하지 말라며 아브라함을 막으셨어. 하나님은 이삭을 대신해서 바칠 숫양을 준비해 주셨고, 아브라함은 그 양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어. 마치 우리를 대신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것처럼 말이야.”
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연희는 아브라함이 수풀에 걸린 양을 발견하는 장면에서, 이삭을 대신할 제물을 예비하신 하나님이라면 자신을 위해서도 무언가를 준비해 주시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이 생겼다. 봄이는 예수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어. 언니와 내가 지은 죄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거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 죄가 용서받았어. 그래서 2천 년 전,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육신의 몸으로 이 땅에 태어나셨어.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 또 다른 구절에선 이렇게 되어 있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봄이가 매일 속닥거리며 나눠주는 성경 이야기들은 이렇듯 연희의 믿음이 자라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신기한 것은 연희와 봄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주변에서 관심을 가질 법도 한데, 감방 안의 죄수들과 간수들은 그 두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보호하심 아래 연희를 위한 일대일 비밀 성경 공부는 몇 달간이나 지속되었다.
지옥 같은 감옥이 하나님을 만나는 천국으로
“뭐? 남조선 사람을 만났어? 네가 기독교를 알아? 그리고 교회를 다녔다?”
화가 머리 끝까지 뻗친 간수가 몽둥이를 탕탕 내리치며 고함을 질렀다. 조사실에서 흘러나오는 살기등등한 위협적인 소리에 감방에 있던 죄수들은 미동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게 성경책이라는 걸 알면서 중국에서 가져왔단 말이지? 어? 하나도 아니고 몇 권을?”
간수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구두발과 몽둥이로 조사받는 사람을 마구 차고 때렸다. 괴로워하는 비명 소리와 사람을 질질 끄는 소리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공포의 순간이었다. 억만 년 같은 길고도 괴로운 시간이 지나고 고요가 찾아들었다.
다음날 연희와 봄이가 알게 된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중국에서 전도를 받아 교회에 갔던 어떤 여자가 손바닥만 한 성경책을 여러 권 가지고 오다가 잡혔고 감옥에서 어제 맞아 죽은 것이었다. 연희는 덜컥 겁이 났다. 비밀리에 하고 있는 성경 공부가 발각되는 날에는 자신도 같은 꼴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연희는 원망하듯 봄이에게 따져 물었다.
“왜 나한테 와서 이래? 여기 갇혀 있는 사람이 몇백 명인데. 왜 나에게 말을 걸고 잘해 주는 거야?”
봄이는 투정하듯 불만스럽게 따지는 연희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하나님이 언니에게 가서 말해 주라고 하셨어. 하나님이 언니에게 나를 보낸 거야.”
“나한테로 보냈다고? 어떻게? 내가 누군데? 무엇이길래….”
연희는 북받쳐 오르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언니야, 이것 봐라. 내가 어제 뭐 주워 개꾸 왔게?”
봄이는 괜찮다는 듯 연희를 향해 밝게 웃으며 손을 펴 보였다. 반짝이는 유리 조각이었다. 봄이는 어제 몸이 아픈 연희를 대신해서 건설장에 다녀왔다. 일하다가 깨진 유리 조각을 발견해서 몰래 들고 온 모양이었다.
“언니야, 망 좀 봐라. 내가 이거 할 동안에.”
봄이는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연희는 영문을 모른 채 경계의 눈초리로 주변을 살폈다.
“언니도 이 글 적어라.”
연희는 봄이가 가리키는 데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벽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봄이가 깨진 유리로 벽을 긁어서 쓴 성경 구절이었다.
“배짱 한 번 두둑하다. 이거 들키는 날에 우리는 맞아 죽는다.”
연희는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말했지만 사실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다. 억울하게 갇혀서 매 맞고 못 먹으며 서서히 죽어 가느니 차라리 하나님을 위해 옳은 일을 하고 싶었다.
“언니야, 우리는 여기서 죽든지 나가든지 하겠지. 우리가 없어지고 나서 이 자리에 믿는 사람이 들어오면 ‘아, 우리 말고 또 믿는 누군가가 있어서 여기다 이런 걸 적어 놨네?’ 하지 않을까?”
봄이의 말에 연희는 전적으로 뜻을 같이했다. 봄이에게서 유리 조각을 건네받아 연희도 하나님의 말씀을 벽에다 썼다. 이 구절을 읽는 사람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을 믿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또한 이미 믿음이 있는 이들에게는 “너의 신앙을 버리지 말아라. 지금은 감옥에서 고통스럽게 살 수밖에 없지만 죽으면 영혼이 자유를 얻어 구원을 받지 않느냐. 하늘나라가 얼마나 행복한 곳인데 그곳에 가는 걸 포기해선 안 된다.”는 의미가 전달되기를 원해서 한 글자 한 글자에 정성을 담았다.
그 일이 있고 네댓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봄이가 자신에 찬 어조로 뜬금없는 말을 했다.
“언니, 나는 이제 이 감옥에서 나갈 거야. 내가 나가고 일주일 후에 언니도 나가게 될 거야.”
그 말을 남긴 봄이는 정말 얼마 안 있어서 감옥에서 풀려났다. 연희도 그로부터 7일 후에 다른 도시로 이송되던 중 기회를 얻어 도망을 쳤다. 연희는 감옥에서 겪은 일을 회상하며 한 가지 중요한 고백을 했다.
“중국에서 북한으로 끌려가기 직전에, 공안이 제 손을 묶은 끈을 느슨하게 풀어주면서 도망치라고 눈짓을 했어요. 저는 이미 자포자기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있었죠. 그런데 옥에 갇히고 몇 달 만에 다른 일이 터지면서 극적으로 탈출할 수 있었어요. 하나님이 허락하신 거였죠. 그때의 일들을 되짚어 보면 제가 만약 중국에서 살 때 전도를 받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을 해 보지만 저는 아마 거절했을 거예요. 제가 듣지 않을 것을 아신 하나님께서 고생스럽더라도 북한 감옥에 가게 하신 거였어요. 모든 희망이 사라진 그곳에서 하나님은 봄이를 붙여서 복음을 듣게 하셨고, 감옥에서 일대일 제자 양육까지 받게 하셨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감옥에 갇힌 죄수였지만, 실제로는 구원을 받아 천국의 삶을 누리는,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복 받은 사람이었어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북한, 그것도 기독교인을 가장 악랄하게 다루는 북한 감옥에서 복음을 듣도록 역사하신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뛰어넘는 전능함으로 오늘도 북한에서 친히 구원을 이뤄가고 계신다. 모퉁이돌선교회는 북한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로 감옥에 갇혀 신음하는 성도들과 북한 감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전도인들을 돕고 있다. 갇힌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지원하는 사역에 참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