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명을 전도하고
여섯 성도와 예배합니다

“동옥아, 오늘 사람들이 수근거리는 걸 들었는데, 중국에 가면 예수님이 살려준다더라.”
별일 아니라는 듯 동철은 무심한 말투로 동생 동옥에게 말했다. “동철 오빠도 그 소리 들었소? 아까 인민반에 갔댔는데 글쎄 중국에 다녀온 여자가 비판서를 읽으면서 ‘교회에 갔더니 먹을 걸 줬습니다.’라고 하지 않았겠소. 그 여자는 ‘잘못했습니다. 다신 안 가겠습니다’라며 싹싹 빌었지만 그 덕에 사람들이 ‘교회가 먹을 거를 준다.’는 걸 알게 됐지 뭐야요. 온 동네가 하루 종일 그 얘기를 하느라 아주 들끓었소.”
‘먹을 거’라는 말을 할 때 동옥은 유독 힘을 주었다. 배급이 끊어져 쌀독이 빈 지 이미 넉 달이 지났다. 내일 끼니를 무엇으로 때울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뭔가 방법을 찾아야 했다.
“오빠, 앉아서 배급이 나오기만을 기다릴 거요? 우리도 강 건너….”
동옥은 동철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아꼈다. 그런데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그러냐.”라며 펄쩍 뛸 줄 알았던 동철이 의외로 잠잠했다.
“뇌물이 고이면 경비대도 움직이겠지.”
동철은 방도를 알아보겠노라며 동옥에게 약조했다.

조물주 하나님이 나를 위해 고통당하시다니

야심한 시각, 압록강을 건너 중국 땅에 들어선 동철과 동옥은 근처 인가로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 똑. 똑. 그 문에서 누가 나오느냐에 따라 자신들은 공안에 신고되거나 인신매매로 팔릴 수 있기에 남매의 심장은 두 근 반, 세 근 반으로 뛰었다. “밖에 누구요?” 다행히 조선말을 하는, 눈매가 선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북조선에서 먹을 것을 구하러 나왔습니다. 도와주시라요.” 동철이 경계를 풀지 않으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자 집주인은 재빨리 사방을 살펴, 보는 눈이 없음을 확인하고 얼른 두 사람을 집 안으로 끌어당겼다. “일단 여기서 지내시오. 우선 급한대로 있는 음식을 챙겨볼 테니 절대로 밖으로 나와선 안 됩니다. 큰 소리가 나서도 안 되고요.”

 

집주인은 거듭 주의를 주고 밖으로 나갔다. 비록 누추한 창고에 마련한 거처였지만, 도움을 받을수 있으리란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동철과 동옥은 긴장이 풀려 스르륵 잠이 들었다. 다음날부터 며칠간 동철 남매는 낮에는 집주인이 창고로 가져다주는 식사를 하고, 저녁에는 그 집에 건너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남조선 TV를 보았다. 그러던 중 집주인이 조물주 이야기를 꺼냈다. “만물에는 다 만든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도 주인이 있는데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동철은 하나님이란 말이 튀어나오자 움찔했다. 동옥도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치떴다. 그런데 집주인은 두 사람이 이해를 못 했다고 생각했는지 다른 각도로 부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죽으면 북조선에서는 뭐라고 말합니까? ‘세상을 떠났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세상을 떠난다는 건 달리 갈 데가 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이 세상을 떠나 지옥이나 천국으로 가야 합니다.

믿는 사람은 천국에 가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떨어집니다. 지옥에 가기 싫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집주인은 하나님, 예수님, 죄, 십자가, 사랑, 은혜 등의 단어를 써 가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동철은 귓등에 스치는 말들을 듣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기독교인이나 남조선 사람들이 북조선 사람의 장기를 팔고 피를 뽑기 때문에 가까이 가서는 안 된다는, 북한에서 수없이 받은 교육 내용이 떠올라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다.

슬쩍 곁눈질하니 동옥도 동철과 별반 다르지 않은 듯했다. 지금은 도움을 받고 있기에 내색할 수 없지만 ‘내가 다시 여기를 오나 봐라’라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

 

그런데 바로 그 즈음이었다. 집주인이 틀어 놓은 “예수”라는 제목의 영화에서 십자가 처형 장면이 나왔다.
사람 심리가 묘한 것인지, 귀로만 들을 때는 모르겠던 것이 눈으로 보니까 새롭게 다가왔다. 나의 죄 때문에 예수가 죽었다는 것이 마음으로부터 믿어졌다. ‘세상에, 우리는 김일성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들었는데 신이라는 분이 나를 위해 죽으시다니. 저렇게 고통을 당하시다니….’ 공포와 분노로 일그러졌던 동철과 동옥의 눈망울에 어느덧 눈물이 고였다.

순교 후에도 성도들이 모여 예배하고

며칠 후, 복음을 받고 북한에 돌아간 동철과 동옥의 삶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계신다’라는 것을 확인한 남매는, 그 사실을 전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불붙는 심정이 되어, 담대하게 주변에 하나님을 전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다.
“일요일마다 친구들이 우리 집에 모이는데 너도 와라. 이번에는 물 뿌리는 예식도 할 거야.”
하나님에 대해 어느 정도 말문이 트인 친구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주일 예배 참석을 권했다. 그러다가 본인들의 성경 지식이나 경험으로는 양육이 어려운 사람들이 생기면 중국에 보내 말씀 훈련을 받게 했다. 위험을 감수해야 했지만 무려 20명이 넘는 성도들이 동철과 동옥의 손을 거쳐 중국을 갔다와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했다.
동철과 동옥은 구제에도 열심을 내어 길을 가다가 꽃제비를 만나면 지나치지 않고 음식을 나누어 주었고, 형편이 어려운 이웃에게도 다가가 쌀과 부식을 가져다 주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 꽤 값나가는 일본산 장화를 신고 시장을 다녀온 동옥이 맨발로 집에 돌아왔다. 옆집 아줌마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서 물었다.
“왜 신발이 없어요? 강도라도 맞았어요?”

“오다가 맨발로 앉아 계신 할아버지가 너무 딱해 보여서 벗어 드렸어요.”
동옥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아니, 그럼 그냥 신발을 하나 사주지. 그 비싼 걸 왜 모르는 사람에게 줘요.”
“예수 믿는 사람은 좋은 걸 줘야 해요. 안 좋은 걸 주면 하나님이 안 받으세요.”
동옥과 동철은 불과 며칠간 중국에 머물면서 공부한 것이 그들이 가진 성경 지식의 전부였다. 그럼에도 배운 것들을 모두 삶으로 실천했다. 북한에서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아가기란 결코 쉽지 않다. 심각한 식량난에 내 주머니를 털어서 남을 먹이거나 조건 없이 남에게 내 것을 주는 것은 일반 주민으로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동철과 동옥의 비상식적인 행동들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사람이 중국에 갔다 오더니 이상해졌다”라며 입방아를 찧었다. 그렇지만 남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복음을 전하고 이웃을 섬기는 사역에 누구보다 열심이던 동옥은 어느 날 보위부에 잡히고 말았다. 중국에 성도를 보내는 일로 사람을 만나다가 발각이 된 것이다. 동옥은 면회 온 가족에게 “내가 기독교인인 걸 다 알고 있으니 돈을 써서 빼내려고 애쓰지 말아요. 억만금을 준다 해도 나는 이제 나갈 수가 없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순교의 길을 갔다.

동생의 죽음 이후에도 동철은 굴하지 않고 하나님을 알리는 일에 힘을 쏟아 매주 6명의 성도들과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금도 핍박받는 북한 땅에서 믿음을 순전히 지키는 성도들을 일으키시고 그들을 통해 주의 나라를 이뤄가시는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올려드린다.

“그 날에 주님의 땅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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