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콤 특집] 북한 성도 30명을 돌보는 사역자 (2024. 9)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 종이 북조선에 들어갑니다. 물건을 싣고 이곳저곳을 다닐 때에 복음을 받을 만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자석이 강철을 끌어당기듯 그들의 마음에 믿음을 붙여 주옵소서. 그들의 귀가 열려 믿음으로 반응하도록 강력하게 역사하실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중국에서 다리를 건너 북한 쪽 세관을 막 통과한 일꾼이 북한에서 감당해야 할 사역을 위해 기도했다. 짐 검사를 받느라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기도 중에 조금씩 풀리는 것 같았다. 잠시 숨을 돌린 일꾼은 북한에 가져갈 짐 보따리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일꾼은 쌀과 옥수수, 디젤유, TV 같은 물건 틈새로 성경책과 라디오가 보이지 않게끔 조심스럽게 짐꾸러미를 다독였다.
저 멀리 북한 마을이 펼쳐져 있었다. 일꾼은 유유히 흐르는 두만강을 뒤로하고 구불구불 난 길을 따라 짐꾸러미를 실은 리어카를 힘차게 밀었다.

국경을 출발할 때만 해도 이글거리던 한낮의 태양이 어느덧 한풀 꺾여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어스름이 깔릴 무렵 일꾼은 어느 집 문 앞에 당도했다.
“계시오?”
몇 번을 불러도 인기척이 없었다. 개 짖는 소리만 애꿎게 들릴 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다 슬며시 대문을 밀어 보았다. 그랬더니 웬걸 뜻밖에도 삐거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일꾼이 빼꼼히 얼굴을 들이밀자 사람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보였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어우우, 배야. 아파! 사람 죽네!”
자지러지는 비명 소리가 집안에서부터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일꾼이 허둥지둥 달려가 보니 앳된 얼굴의 남자아이가 데굴데굴 구르며 토하고 있었다. 아이가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어른들은 술렁이며 동요했지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속수무책으로 서 있기만 했다. 왕진 가방을 맨 의사 2명이 아이 부모를 불러 뭐라뭐라 지시를 했다.
“소금과 소다 가루를 넣고 끓인 물에 발을 담가야 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전기가 귀한 북한은 화롯불을 피워서 물을 끓였다. 장작을 지펴 물을 팔팔 끓게 만들려면 1시간은 족히 걸렸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마당에 1분도 아닌 60분은 긴 시간이었다.
죽는다고 소리치는 아이의 비명이 둘러싼 어른들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의사가 처방한 물을 준비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너나 할 것 없이 구석에 고개를 틀어박고 칠성신에게 빌기 시작했다. 머리와 허리를 연방 굽신거리며 아픈 소년을 위해 치성을 드리는 그림자들이 희미한 기름 등 불빛을 따라 얽히고설켰다.

“이런다고 아이가 살 거라고 생각합니까? 정신 차리십시오. 칠성신에게 아무리 열심히 빈다 해도 아이는 죽습니다. 그러나 제가 믿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살 길이 열립니다. 하나님은 아들인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모든 죄를 걷어 가시고 생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을 인정한다면, 이 하나님이 아픈 아들을 살려줄 것을 인정한다면, 지금 바로 앉은 자리에서 돌아서십시오! 칠성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겠다면 뒤돌아 앉으십시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일꾼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칠성신에게 바쁘게 손바닥을 비비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일꾼을 쳐다보았다. 아이가 곧 죽을지 모른다는 절망의 눈빛들이 어쩌면 살 방도가 있을 수 있다는 한 줄기 희망의 빛으로 출렁였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뒤돌아서서 무릎을 꿇었다. 강력한 성령의 역사였다.
“이제 칠성신에게 빌던 것을 그치고 하나님께 기도하겠습니까?”
일꾼이 재차 확인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한 목소리로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그들의 의사를 확인한 일꾼이 아이에게 다가가 손을 펴고 기도했다.
“살아계신 하나님, 세상의 의술로는 고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절대적인 하나님의 능력과 힘을 구합니다. 주님의 권능의 손을 펴사 악한 병은 떠나가고 영혼이 소생되게 하옵소서. 죽을 병에서 완전히 놓임받아 주님의 치료의 손길이 만인에게 증거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여기에 모인 모든 사람이 일평생 주님을 믿고 따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도를 끝마친 일꾼이 보따리 속에 꽁꽁 숨겨 놓았던 라디오를 가져왔다. 다이얼을 이리저리 돌리자 신호가 잡혔다. 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어느 목사님의 설교가 때마침 흘러나왔다. 잡음이 섞였지만 꽤 선명한 음질이었다. 일꾼은 이어폰을 소년의 귀에다 연결해 꽂아 주었다.
아이를 빙 둘러싼 좌중의 기도가 계속되었다. 라디오 속 목사님의 설교도 멈춤없이 이어졌다. 끊임없는 기도와 말씀 속에서 소년은 점차 평온을 되찾았다. 심지어 새벽녘에는 자리에서 툭툭 털고 일어나 앉기까지 했다. 하나님이 베푸신 기적이었다. 아이가 죽음의 문턱에서 건짐받아 생명으로 옮겨진 것을 똑똑히 목격한 가족과 친지들은 예수를 주라 시인하고 하나님을 믿기로 결정했다.

하나님이라는 신이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죽어가던 소년을 살렸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마을 전체에 퍼졌다. 동네 사람들은 하나님의 종인 일꾼을 만나고 싶어했다. 일꾼은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쌀과 기름, 전자기기 등 리어카에 실어온 물건을 늘어놓고 팔면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러기를 며칠, 살아난 소년의 엄마가 일꾼을 찾아왔다.
“오늘 저녁에 제 친구 집에 가십시다. 아들이 살아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목사님을 꼭 뵙고 싶어합니다.”
“알겠습니다. 이따 오십시오.”
저녁 7시가 넘어가자 새벽 2시 같은 어둠이 마을을 덮었다. 그러나 소년의 엄마는 앞뒤, 좌우가 분간되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기까지 몇 시간을 더 기다렸다가 출발했다. 마을은 고요했고 달빛만이 두 사람이 가는 길을 비췄다.
몇시간 같은 몇십 분이 흘러 목적지에 당도했다. 방에는 희미하지만 불이 켜 있었다. 소년의 엄마와 일꾼이 방으로 들어가자 ‘친구’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녀는 품에 간직한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색이 바래고 군데군데 구겨진 흑백 사진이었다.
“제 아버지는 장로님이셨고 어머니는 권사님이셨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사진입니다.”
집주인인 자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장례식에 정말 어마어마한 인파가 모였군요. 이런 광경은 처음입니다. 아주 큰 교회 장로님과 권사님이셨나 봅니다. 얼마나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겼으면 이렇게 많은 분들이 모여….”
일꾼은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당시 북한에 하나님의 사람이 소수가 아닌 다수였음을 사진을 통해서 확인하니 감격스러웠다.
“저는 하나님을 믿는 악질 종교인의 자식이라고 입당도 안 되고 승진도 못 하고 결혼도 할 수가 없어 혼자서 겨우 연명하다시피 살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는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계신 천국에 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지은 죄가 너무 크고 많아 갈 수가 없으니 괴롭습니다.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나는 이제 어쩌나 하는 생각뿐입니다. 힘들고 슬퍼서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목사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북한 당국으로부터 엄청난 압박과 불이익을 받으면서도 부모가 물려준 값진 신앙의 유산을 지켜온 자매에게는 믿음을 완성해 줄 예수님이라는 신앙의 퍼즐 조각이 필요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예외없이 들어야 할 기쁜 소식을 그녀도 들어야 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여김을 받았습니까? 죄를 짓지 않아서입니까? 아닙니다. 죄를 짓느냐 안 짓느냐 하는 행위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되는 의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장 23~2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아버지가 계신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죄에서 자신을 건져줄 구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용서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하게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는 모든 죄를 사하여 우리를 의롭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은 예수 십자가의 의를 힘입는 것뿐입니다. 자매님에게 필요한 한 가지는 예수를 믿는 믿음뿐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예전의 삶의 방식을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단하십시오. 주홍 같은 붉은 죄를 흰 눈보다 더 희게 하시는 그분의 의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나가시기 바랍니다.”
일꾼은 성령이 주장하시는 대로 입을 열어 십자가 복음을 증거했다. 하나님의 임재가 좁은 방안에 가득해 흘러 넘치는 듯했다. 장장 2시간 동안 목사인 일꾼에게서 말씀을 전해들은 자매는 엉엉 울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이미 다 들었던 것이지만 너무 두려웠습니다. 죄 지은 것이 너무 많아서 하나님께 죄송하고 부끄러워 천국은 언감생심 감히 꿈도 못 꾸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저의 모든 죄가 사함받았음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니 붉디붉은 죄가 흰 눈처럼 깨끗해졌습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니 마음이 뛸 듯이 기쁩니다.”
“네, 자매님,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이처럼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어 죄로부터 구원을 받아 마음에 평강이 넘칩니다.”
“다시는 제 자신의 의와 공로를 내세우지 않겠습니다. 죄인의 심정으로 빈 손으로 나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단단히 붙잡겠습니다. 일평생 예수님 보혈의 공로를 찬양하며 살아가겠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을 더 알고 싶습니다. 계시는 동안 오셔서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일꾼은 내일 같은 시간에 오겠노라고 약속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자매의 집을 찾았을 때 방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 한 분이 앉아 있었다. 누구인지 궁금하던 차에 자매가 소개했다.
“저에게는 믿음의 어머니 같은 분이십니다. 다른 지역, 다른 시에 살고 있는 성도 30명의 집을 다니면서 말씀을 전하십니다. 제가 목사님 이야기를 했더니 열일 제쳐 놓고 달려오셨습니다.”
자매의 말이 끝나자마자 할머니가 바로 이야기를 이어받았다.
“제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목사님을 만나는 게 평생 소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작은 자의 소원을 기억하시고 오늘 이루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목사님, 우리나라도 희망이 있겠습니까? 이 나라의 흑암이 언제 벗겨지겠습니까? 언제 이 어둠이 물러가겠습니까?”
일꾼을 만난 기쁨도 잠시, 곧 조국의 미래를 생각하며 할머니는 침울에 빠졌다.
“저도 사회주의 국가에서 별반 다르지 않게 자랐습니다. 그러나 성도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능한 분들이 저희 집에 오셔서 며칠씩 묵으면서 성경 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 때문에 저는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양육을 받아서 오늘날 이렇게 목사가 되어 성도님 앞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북조선을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일꾼은 성경책을 폈다. 오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볼 계획이다. 말씀을 대하는 자매와 할머니의 태도는 더없이 진지했다. 성경을 공부하는 집 위로 은비늘 같은 달빛이 하나님의 은혜처럼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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