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콤 특집 1] 하나님을 바라며 기도하는 우리에게 북한을 주소서 (2024. 5)

북한으로 가는 첫 번째 여행이 긴장과 동경, 기대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단동을 거쳐 신의주로 들어가 북측 입국심사소 앞에 서니, 1980년대 소련 군복 비슷한 옷을 걸치고 북한 지도자의 얼굴이 새겨진 배지를 가슴에 착용한 직원들이 우리를 맞았습니다.
신의주 일정에는 유치원 아이들의 공연을 관람하는 시간이 포함되었습니다. 공연은 제가 예상한 것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완전히 전문적이었고, 아이들이 보여준 특기는 그들의 나이에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입학한 지 채 한 달도 안 된 유치원 아이들이 이런 공연을 하기 위해서 어떤 훈련을 받았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다운 천진난만한 미소와 순수한 눈빛을 잃어버리고 똑같은 표정, 똑같은 눈빛, 똑같은 미소, 똑같은 몸짓을 하는 꼭두각시들 같았습니다.

공연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작은 첩보병’이라는 촌극이었습니다. 네 명의 조선 첩보병과 한 명의 미국인, 한 명의 일본인이 나왔는데, 미국인은 족제비 미행 복장을 하고, 일본인은 개 복장으로 무대에 등장했습니다. 그 어린 마음에 이미 교육을 통해 증오심의 씨앗이 뿌리내려 있었습니다.
북한은 우상 숭배를 강요할 뿐만 아니라 문화, 사상, 가치관까지 통제했습니다. 순수하고 밝아야 할 아이들이 특수부대원 같은 표정과 눈빛을 한 걸 보면서, 이런 교육을 받는 아이들을 하나님께서 변화시키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일으켜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은 북한 당국에 의해 배치된 사람들이었는데 어떤 결핍도 느끼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오히려 강한 행복감을 표출하는 것을 보며 도리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환자는 고통을 느낄 때 의사에게 도움을 구합니다. 그러나 궁핍하고 무력한 북한 주민은 부족함이 없다고 세뇌당한 모습이었습니다. 거짓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눈을 열어 주시고 수령을 숭배하는 사상에 물든 모든 주민이 어린아이로부터 시작되어 하나님의 아름다운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모습으로 회복되어 하나님을 높이고 예배하는 백성이 되기를 간구하였습니다.
하루 일정으로 북한 기도 여행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기도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3박4일의 기도여행을 준비했습니다.

신의주를 당일치기로 다녀온 이후, 북한 사람을 더 가까이에서 접촉하고 북한 땅을 더 선명하게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평양을 가보기로 했습니다. 단동에 있는 여행사에 막상 평양 여행을 신청하고 나니 입국 승인이 날 수 있을지, 무사히 평양 땅을 밟을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렇지만 주권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결심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것은 무엇이든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하나님이 행하실 일들이 기대되었습니다. 문득 북한이 건너다 보이는 단동에서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변은 관광객으로 붐비지 않았습니다. 대신 북한과 중국을 오가는 화물차들이 한 대씩 다리를 건너가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때 저는 다리를 통해 운송되는 것이 단지 그 땅 사람들의 육체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물자뿐만이 아니라, 그곳 영혼을 살찌우는 생명의 양식이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했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여행 허가가 나왔습니다. 단동을 떠나 신의주 국경에서 보안 검사를 받았습니다. 2시간 30분 동안 세면도구를 포함한 모든 여행 물품을 하나하나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승객들은 자리에 착석해 있어야 했습니다. 기차에서 내리거나 객차 내에서 이동할 수 없었는데 일반적인 보안 검색임에도 긴장된 분위기가 승객들을 감쌌습니다.


북한을 여행하는 승객들은 예전의 중국을 추억하며 그 시절을 다시 느끼고 싶어하는 중년층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호기심 많은 젊은 사람들이 섞여 있었는데, 대학원 진학을 앞둔 한 청년과 잠깐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북한을 여행하는 이유에 대해 이 나라가 언제 망할지 모르니 빨리 보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기차를 타고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사람들의 마음과 시선이 무척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과 여기에 사는 사람들을 어떤 눈, 어떤 마음가짐으로 바라보고 계실지가 궁금했습니다.

드디어 검색이 끝나고 기차가 출발했습니다. 창밖으로 간간이 몸을 굽혀 바쁘게 일하는 농부들과 쟁기를 끌며 밭을 가는 소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기차는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며 멈췄다가 다시 출발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지나가는 역마다 상징적인 흰색 건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건물 중앙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가 붙어 있고, 초상화 양쪽으로 ‘위대한 수령님’이라는 찬양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높게 솟은 영생탑과 김일성의 초상화, 김일성을 찬양하는 슬로건들은 평양 시내 곳곳에서도 발견되었습니다. 평양에서 가장 활기찬 곳, 저녁 10시 이후에 불빛이 빛나지 않는 평양 거리에서 유일하게 밝은 곳은 바로 이런 곳 주변이었습니다. 여행객들은 사진을 지정된 장소와 시간에만 찍을 수 있었습니다. 규정을 조금이라도 어기면 북한 측 안내원이 주저없이 카메라를 빼앗아 사진을 삭제해 버렸습니다.
평양에서 보낸 며칠은 자유가 없고 김일성을 숭배하는 분위기가 더해져 압박감이 심했습니다. 그곳 사람들을 보는 제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하나님이 없어 사망의 그늘에 앉아 있는 그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간구했습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는 성경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들이 좇아가는 길은 결코 행복이나 만족을 주지 못함을 그들이 알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에게 의로운 해가 떠오르게 해서 치료의 광선을 발하게 하는 분이시기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있는 그들에게 빛을 비추어 하나님의 큰 빛을 보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저들의 모습은 저의 옛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저도 그들과 다를 바 없이 죄악 속에서 죽어 갔을 것입니다. 여행 중에 북한 사람들과 직접적인 대화를 하지는 못했지만, 그 땅 사람들의 공허함이 깊이 전해졌고 그들의 표정과 행동에서 혼란함과 불확실함이 묻어났습니다.
그들은 입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자랑했습니다. 주택이나 교육, 의료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인데 주택이 무료여도 나눠줄 집이 충분치가 않고, 모든 사람이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의약품 역시 턱없이 부족한 상황인데도 말입니다.

평양을 다녀오고 나니 그 땅과 더 가까워진 것을 느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얼마나 간절히 열망하고 계신지, 또 중국 교회로 왜 기도하게 하시는지를 깨닫고 돌아서는 시간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2020년 코로나 상황이 발생하자 바로 북한 국경이 봉쇄돼 북한에 들어가는 기도 사역이 막혔습니다. 최근 북한 여행이 가능해졌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다시 중국 성도들이 북한에 들어가 북한에 하나님의 나라가 충만하도록 기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과거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북한이 회복되기까지 그 땅을 밟으며 주님의 사랑으로 기도하고, 성경을 배달하고 구제하는 선교를 충성되게 감당하도록 여러분도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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