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콤 특집] 하나님 말씀의 생명으로 사는 북한 성도 (2023. 12)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책을 꺼내서 보고 있어요.
읽으면서 힘을 얻어요.”


최근 북한에서 사진 한 장이 전달됐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배경으로 찍은 가족 사진이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책을 꺼내서 보고 있어요. 읽으면서 힘을 얻어요.”라는 메모도 함께 왔다. 사진(그림) 속 주인공은 본회 일꾼이 20여 년 전 만난 사람으로, 중국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복음을 전했던 이였다. 그가 중국에서 머물 수 있는 기한이 끝나 북한으로 돌아갈 무렵, 뜻밖의 제안을 일꾼에게 했다. 성경책을 가져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결국 요한복음을 떼어서 북한에 들어갔는데 그후론 소식이 끊겼다가 얼마 전 사진과 메모가 온 것이었다. 20년 넘게 북한 내부에서 쪽 복음을 읽으며 믿음을 지켜 온 북한 성도의 이야기를 정리한다.

어렴풋한 불빛에 말씀을 비춰 보고

그 안에 생명이 있었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였다
그 빛이 어둠 가운데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요 1:4~6)

어둠이 푸른빛에 살짝 섞여 내려앉기 시작한 초저녁 무렵. 강훈은 아직 희미한 빛이 남아있는 창문에 기대서서 요한복음 1장을 읽고 있었다. 그는 행여라도 이웃집에서 볼세라 주위가 점점 어두워지는데도 불을 켜지 않고 한 자 한 자 손으로 짚으며 그 내용에 집중했다.
“형님, 안에 있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강훈은 깜짝 놀라 황급히 성경을 구들 밑에다 감췄다.
“저녁인데 불도 안 켜고 뭐 하오?”
성경책을 급하게 밀어 넣고 짐짓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앉은 강훈을 영일이 의뭉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휴~”
다른 사람이 아닌 영일이라는 걸 확인한 강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영일은 강훈이 유일하게 흉금을 터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직장에서 친하게 지내는 동생이었다.
“형님, 또 그 책 봤소?”
영일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쉿, 조용히 하라. 누가 듣겠어. 무서운 줄 모르고….”
강훈은 눈을 흘기며 영일에게 주의하라는 시늉을 했다.
“형님, 근데 있잖소. 그 책 어떻게 구했소?”
강훈은 책이란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는 온 촉각을 곤두세워 미세한 바람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다. 아무도 없다는 걸 거듭 확인한 다음에야 그는 자리로 돌아와 입을 열었다.
“지난번 중국에 갔을 때 말이야. 어떤 선한 사람을 만났는데….”
20년 전의 일이 떠오르는지 강훈의 눈이 아득해졌다.

보석 같은 말씀을 북에서도 보고 파서

“선생님, 하나님이 살아 계십니다. 선생님이 못 사는 건 하나님을 안 믿어서 그럽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북조선은 자원이 풍부합니다. 예전처럼 하나님만 잘 믿으면 북조선도 얼마든지 강국이 될 수 있습니다.”
회상 속에서 강훈은 목사님이 하는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는 겉으로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이건 무슨 소리야? 하나님이 어쩐다고?‘ 하며 마음이 요동쳤다.
“선생님, 하나님이 우리와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함께하기를 원하시지만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죄를 지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이셨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고 고백하면 영원한 하늘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돌아간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우리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는데 거기가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선생님, 이 땅에서 고생만 하다 죽지 말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십시오.”
목사님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은 강훈의 심장을 흔들어 놓았다. 다 동의되거나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보통 말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강훈은 방금 들은 한 마디 한 마디를 곱씹으며 골똘히 생각했다.
“선생님, 여기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한 번 읽어 보세요.”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던 강훈에게 목사님이 성경책을 건넸다.
‘성경책? 당국이 금지한 불온 서적이 아닌가.’
오랜 기간 세뇌를 당한 강훈의 뇌는 절대로 성경책을 받아서는 안 된다라고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반짝 반짝 윤이 나는 성경책 겉 표지는 어서 펼쳐 보라는 유혹의 손짓을 보냈다. 강훈은 마치 뭐에 이끌린 듯 성경책을 받아 들었다.
숙소에 도착한 강훈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성경책을 펼치는 것이었다. 그는 일단 손가락으로 책장을 휙휙 넘기며 보이는 구절들을 훑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마태복음 2장에서 눈길이 머물렀다.

헤롯 임금 시대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여나시자 동방에서 현인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말하기를 유대인들의 임금으로 태여나신 분이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니 헤롯임금과 온 예루살렘이 함께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마 2:1~3)

“아하,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구나.”
강훈은 무릎을 탁 쳤다. 성경 지식이 전무한 그로서는 작은 실마리를 하나 잡은 것 같았다. 강훈은 그 장을 기점 삼아 정독하며 읽기 시작했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에도 강훈은 손에서 성경책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말씀을 읽는 주경야독의 삶이 여러 날 계속되었다. 이윽고 강훈이 북한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짜가 되었다. 그는 인사도 할 겸 마지막으로 교회를 찾아갔다.
“저… 성경을 몇 장 가지고 돌아가도 일없겠습니까?
강훈이 쭈뼛거리며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그건 장담 못 합니다. 위험을 무릅써야 하기에 선생님이 선택하셔야 합니다. 특별히 가지고 가고 싶은 장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저 두루두루 읽어 보니까 좋은 말 같아서 집에서도 보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요한복음을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나와 있는 성경입니다.”
목사님은 신약 성경에서 요한복음을 뜯어내 안이 보이지 않게끔 비닐로 꽁꽁 쌌다. 강훈은 선뜻 성경책을 집지 못하고 쥐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비장한 얼굴이 되어 품속 깊이 성경을 넣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하늘의 기쁨과 소망이 가득한 성탄절이 되기를

“형님, 용케 안 걸렸소.”
중국에서 성경책을 가지고 나온 모든 과정을 들은 영일이 한 말이었다.
“하나님이 도우셨지. 만약 그때 걸릴 게 두려워서 이 귀한 걸 안 가져왔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해. 읽고 나면 얼마나 마음이 좋은지. 힘들 때 보면 힘이 생겨. 이제 곧 12월 25일인데 그날이 무슨 날인지 아나? 예수님이 태어나신 크리스마스야. 하나님을 떠나 죄를 지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아들 예수를 보내 주신 날이야. 하나님은 죄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해서 우리를 구원하셨어. 그걸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자는 천국에 갈 수 있지. 이 책에 그 모든 내용이 기록돼 있어. 여기를 보라고. 예수님에 관한 증언이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으니 그로 말미암아 생겨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였다
그가 자신의 백성에게 오시자 그 백성이 그를 영접하지 않았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사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 (요 1:3~4,11~12, 3:15~16)

강훈은 언제 꺼냈는지 어느새 성경을 손에 쥐고 있었다. 성경책은 20년 넘는 세월을 반증하듯 헤어질 대로 헤어져 있었다. 그는 영일에게 요한복음에서 인상 깊었던 몇 구절을 읽어 주며 복음을 전했다. 영일은 그 옛날 중국에서 강훈이 그랬던 것처럼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강훈은 너무 봐서 너덜너덜해진 그러나 소중하게 간직해 온 요한복음을 영일에게 내밀었다.
“읽어 봐.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야. 너에게도 힘이 될 거야.”
“……”
영일은 말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성경책을 받았다.
“서양에서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며서 12월 25일을 기념한다고 들었어. 나는 산에서 나무를 해다가 비슷하게 흉내내 볼까 하는데 같이 갈래?”
“좋소. 형님.”
영일의 좋다는 대답이 왠지 예수님을 믿고 싶다는 말인 것 같아 강일은 흐뭇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 동지가 생긴 것도 너무 든든했다. 강훈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영일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강훈은 영일과 함께 맞는 성탄절이 벌써부터 기다려졌다.

금년 성탄절에도 북녘 성도들에게 이 땅에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뻐하는 감격이 넘치기를 기도한다. 12월 19일 남한 성도들과 탈북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드리는 성탄예배에서는 북한으로 돌아갈 때를 준비하는 탈북민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북한으로 배달되고 있는 『남북한 병행성경』을 선물하며 축복하는 시간을 갖는다. 성탄예배가 녹음되어 12월 25일 북한에 보내질 때 숨죽여 예배하는 북녘 성도들이 깨끗한 음질로 방송 예배를 듣고 위로과 큰 기쁨이 가득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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