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진 예루살렘
할렐루야!
2021년 성탄절은 저에게 많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기쁘기도 하고, 벅차기도 하고, 큰 기대를 품기도 하고, 오가는 소식에 아파하며 슬퍼하기도 한 성탄이었습니다.
먼저, 제일 기뻤던 것은 예루살렘에서 맞는 9번째 성탄절에 만난 성탄의 흔적이었습니다. 올드시티 크리스천 구역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마켓의 화려한 네온사인과 울려 퍼지는 성탄송, 즐거워하는 인파들. 비록 짧은 한 구역의 길이라 아쉬움이 남지만 이 땅에서 9년을 살아온 저에게는 얼마나 큰 감격이고 기쁨이었는지 모릅니다. 2013년부터 2020년까지 똑같은 장소를 여러 번 방문했으나 성탄 용품을 파는 몇몇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쓸쓸한 캐롤송과 매년 똑같은 모양의 트리가 전부였는데 2021년의 분위기는 큰 기쁨의 흥과 감사의 노래가 저절로 나오게 했습니다.
그 길을 돌아 나오면서 우연히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시야에 뾰족하고 노란 성탄 트리가 멀리서 빛나는 것이 보였습니다. 남편을 불러서 가 보자고 재촉했습니다. 그 옛날 동방박사들이 별을 발견하고 별을 좇아서 먼 길을 간 것 같이, 우리도 예수님이 이곳에 계시다고 말하기 위해 서 있는 것 같은 빛나는 성탄 트리를 향해 걸어 갔습니다.
트리가 세워진 곳은 놀랍게도 히브리대 옆의 한 전망대였습니다. 올리브산과 올드시티의 불빛이 빛나는 예루살렘 성과 메시아가 오실 때까지 꼭 닫혀 있는 골든 게이트, 성지 예루살렘 시가지가 한 눈에 보이는 바로 그 전망대에 20미터 높이의 대형 트리가 우뚝 세워져 있었습니다.
우리처럼 트리를 보고 쫓아 달려온 차량들로 거리는 붐볐습니다. 젊은이들과 가족들이 트리 아래에서 사진 찍는 모습이 정겨웠습니다. 트리는 전망대 아래에 있는 한 아랍인 카페 사장님이 세웠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트리를 세우려면 시에서 허락을 해줘야 하는데 놀랍게도 유대 종교의 도시 예루살렘 시에서 적극 협조를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너무도 신기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성탄 트리 꼭대기에 달린 빛난 별을 우리는 압니다. 세상에서 가장 빛나야 하는 아기 예수라는 것을요. 초라하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지라도 그 빛은 꺼질 수 없고 여전히 빛나고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그분의 삶과 죽음을 초라하게 만들었던 바로 저들이 이 성탄 트리로 빛나는 예수님을 인정한 셈이니 ‘야호!’ 하고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한국어로 울려 퍼진 찬양
며칠 뒤 성탄 주간에는 더 감격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비 오는 성탄절 날 OO한국문화원에서 여학생을 위한 한글 수업이 열렸습니다. 한글과 한국 문화가 좋아서 한국인도 무조건 좋은 아이들과 3개 반으로 나눠서 한글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한 반에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에 이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양이 흘러나왔습니다. 어둔하고 불안한 음정이었지만 아이들은 너무나 즐겁게 선생님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한국어로 열심히 노래를 했습니다. 제 앞에 앉아 있던 다른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노골적으로 저래도 되나?” 하는 염려와 더불어 “우와! 저 선생님(사실은 목사님) 대단하시다!”라는 무언의 감탄이 마주친 시선 사이로 튀어 올랐습니다.
몇 번을 연습한 그들은 문화원 내에 있는 조그만 성탄 트리를 배경 삼아 영상으로 찬양을 녹화했습니다. 저는 넘치는 기쁨을 속으로 감추며 긴장 가운데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 정작 학생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선생님과 호흡을 맞추며 아름다운 찬양을 불렀습니다.
우리는 녹화에 방해될까 옆에서 작은 소리로 찬양을 따라하며 벅찬 감정을 조용히 가슴에 묻었습니다. 담당 선생님 말씀이 아이들은 성탄절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스스로 그 곡을 선택하여 같이할 것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담당 선생님조차 당황하여 찰나의 갈등을 겪었지만, 이끄심의 은혜를 누리고 싶으셨다고 말씀하셨어요. 당시의 감격은 아버지가 가장 잘 느끼셨을 줄 믿습니다.
그중 한 아이는 성경을 알고 싶어서 성경을 가지고 다니며 문화원에서 성경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에 대해 많이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학생은 그들이 믿는 종교에서 강요하는 히잡을 벗어 던졌고, 또 어떤 학생들은 우리가 그냥 한국인이 아니라 정말 저들을 사랑하는 목사, 사모인 것을 안다는 고백을 그날 밤에 했다고 합니다. 문화원에 출입하는 생명으로 인해 그 땅이 진리로 자유해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실, 저는 그날 문화원으로 가기 위해 차로 움직이던 중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길고 선명한 무지개를 보았습니다. 노아의 무지개가 이 땅을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으리라는 약속의 표징이었듯 그날 제가 만난 무지개 또한 이 땅 백성에게 동일한 약속으로 성취되리라는 말씀 같았습니다.
우리 일꾼들이 기경하는 경작지가 넓고 거칠어 지치고 힘들지라도, 경작지에 씨를 뿌리고 다독이고 물을 주고 해를 피하게 하기 위한 노동에 쓰러질지라도, 또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서 나무가 되어 꽃이 피고 열매가 영그는 시간이 많이 더딜지라도, 우리가 일꾼으로 있어야 하는 분명한 이유를 만난 기적 같은 날이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아직 입술과 마음으로 예수를 영접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가야 할 희망입니다.
예수 탄생의 기쁨을 노래한 베들레헴 거리
성탄 전날, 베들레헴에서도 문화원 못지않은 기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베들레헴은 아랍 구역이기는 하지만 크리스천 인구가 많은 땅입니다. 예수탄생교회, 목자들의들판교회가 있고, 매년 전 세계에 방영되는 성탄전야 예배가 있는 동네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성탄 분위기를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 곳이기에 성탄절이면 그곳을 찾아 성탄의 기쁨을 누리곤 합니다.
하지만 그 지역은 애잔하게 아픈 곳이기도 합니다. 높은 분리 담벼락이 상징적으로 말해 주듯 아랍 백성이 겪는 차별의 큰 그늘이 있는 곳입니다. 아기 예수가 탄생한 곳의 기쁨을 여전히 흑암 가운데서 바라보는 슬픔이 있는 곳입니다. 코로나로 성지 순례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더욱 피폐해진 베들레헴 땅에는 우리 성도들이 있습니다. 힘들고 지친 현실을 사는 그들이지만 아버지를 거리에서 경배하고 싶은 간절함은 어려움 중에도 소망이 되어 더욱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 되었고 간절한 기도가 되었습니다.
베들레헴선교센터(BMSC)는 한국인 사역자들과 베들레헴 아랍인 성도들이 함께하는 밴드를 구성하여 4개월의 연습 후에 마침내 첫 공연을 베들레헴 예수탄생교회 광장에 있는 평화의 센터에서 올릴 수 있었습니다.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오고 여행객들이 둘러싼 그 장소에 제가 있었다는 게 또 다른 성탄절의 기쁨이요 감사이며 영광의 은혜를 맛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어와 아랍어, 영어로 “참 반가운 신도여”, “Gloria”,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등 여러 곡으로 아버지를 찬양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요. 어색한 저의 팔을 펼쳐서 올릴 정도였습니다. 아버지를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기 원하는 팀원들의 열심을 아버지께서 흡족히 받으셨을 줄 믿습니다.
베들레헴 거리 거리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간이 더 많아져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는
2천 년 전의 말씀이 오늘도 선포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그 땅에 참 아버지의 성도들이 넘쳐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스라엘 곳곳에서 성탄의 빛이 여전히 빛나고 있습니다. 베들레헴에서나 볼 수 있던 대형 트리를 예루살렘에서도 하이파에서도 나사렛에서도 만날 수 있는 해였습니다. 몇 일 전 올드시티를 걷는데 앞에 검은색 정장을 말끔히 차려 입고 키파를 쓰고 머리에 수건을 두른 종교인 가족이 성탄절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고 있었습니다. 절대로 무너질 것 같지 않은 높은 성벽과 좁은 돌길과 돌벽으로 둘러쳐진 골목길들이 그날은 달콤한 마시멜로 같았습니다.
아버지의 긍휼과 인애가 이 땅에서 가장 빛나고 있다는 것을 2021년을 마무리하는 달인 12월에 저는 더 잘 보게 되었습니다. 많은 감격이 있었습니다. 반면 그래서 더 애가 타고 가슴 아프고 눈물이 많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슬프고 아픈 눈물보다 기쁘고 감사한 눈물, 감격의 눈물이 많았던 달이었습니다.
현실이 힘들고 지칠지라도 우리는 땅의 소망이 아니라 하늘의 소망을 안고 사는 백성이기에, 우리를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완전한 소망이시기에, 하늘을 향해 우리의 영을 열어 두고, 날마다 행복한 성탄절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가슴에 있는 한 별, 오직 그 큰 별이 우리 모두의 주인이 되실 줄 믿습니다. 성지의 땅 예루살렘에서 인사드렸습니다. 샬롬 샬람!
김한나(이스라엘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