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형국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북한에 돌아가면 기도하는
사람을 많이 일으키고,
주님을 따를 수 있게 할 것입니다!”
나는 우리나라 코로나를 통하여 아버지께서 여전히 우리나라에도 사랑의 눈길을 돌리시고 귀 기울이신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나는 많은 경우 우리 사람들이 아버지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하늘을 철과 같이, 땅은 놋과 같이 만들어 해마다 흉년이 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비료는 부족해도 전국이 달라붙어 대용비료를 지원하고 밥 먹는 사람을 다 농사일에 동원시키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그래도 농사가 안되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일로 생각하면서 “의인에게도 빛을 비추시고 불의한 자에게도 똑같이 비를 주신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맞지 않는가! 우리 백성들이 지은 죄가 도를 넘어서인가” 하며 갈등한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를 통해서 나의 갈등을 깨끗이 없애 주셨습니다. 백신도 못 맞고 제대로 먹지 못해 면역력이 심히 떨어진 우리 사람들에게 아버지께서는 다행히도 전파력은 세나 병독성이 제일 약할 때 코로나를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참새 한 마리도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떨어질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 이 세상에 우연이란 결코 없다고 볼 때 아버지의 섭리에 의해서 우리나라가 코로나를 쉽게 넘길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감사가 저절로 터져 올랐습니다.
성령의 인도함 받는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마음에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면
슬픈 오늘도 기쁨으로
이겨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공부를 시작한 지 수개월이 지나고 금년부터는 아버지께서 저의 생활에 더욱 간섭하시는 것같이 느껴집니다. 그전에는 주님의 음성을 가려듣지 못하는 것이 제일 안타까웠습니다. 남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마치 일상 대화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나는 믿어지지 않았고 신비롭기까지 하였습니다.
하는 수 없이 모든 말씀을 나에게 들려지는 음성으로 간주하고 생활하기로 하였습니다. 한편 성령님께 통변의 은사를 달라고 간절히 대화하였습니다. 다른 분의 도움으로 방언 통변을 받고 보니 나의 영이 아버지와 이렇게 깊은 대화를 하고 있는 줄 상상도 못하였습니다. 음성을 가려 못 들어도 통변을 하면 아버지와 나의 영이 대화하는 것을 통해서 아버지의 뜻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대화를 하기 위해 노력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나에게도 조금씩 깨달음이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뚜렷한 것은 집으로 돌아가면 대화하는 사람을 많이 일으키고, 가족과 이웃에게 나를 보고 주님을 따를 수 있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사람들 앞에 너희 빛을 밝게 비추어 사람들이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장 16절 말씀이 나에게 임하였습니다. 나는 이 말씀을 항상 가슴 깊이 새기고 주님 만나는 날까지 가렵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내가 회개치 않았던 수십 년 전까지의 일도 끄집어내 나를 책망해 주십니다. 심지어 우리 오빠가 막내를 따뜻하게 사랑하는 것 같지 않아 오빠에 대한 섭섭한 감이 있었는데 대화하는 중에 그 원인이 나에게 있다고 하십니다. 나는 이제 돌아가면 식구들에게 나의 지나온 과거를 사과하고 남들이 부러워할 수 있는 화목한 가정을 만들렵니다.
대화를 하면서도 정말 나의 대화가 아버지께 상달되는지 끈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느 정도 감이 잡힙니다. 대화 도중 목과 잔등이 뜨거워지고 팔에 전기 오는 것같이 느껴지며 때로는 온 몸이 떨리는 감도 있습니다. 이런 때는 이 대화가 꼭 응답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고 또 실제로 확인된 적도 있습니다.
가령 우리 친척이 아프다고 하여 내가 간구했는데 그 다음날 많이 좋아졌다는 소식이 온 적도 몇 번 있습니다. 나는 대화로 아버지 뜻대로 하고 간절히 부르짖을 때 응답된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지하 기독교인들의 대화가 그치지 않고 있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대화할 때마다 우리 지하교인들의 입을 열어 주시고 통제자의 눈을 멀게 하여 아버지의 나라가 하루 빨리 임하도록 해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들의 마음속에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면 오늘은 비록 슬프고 눈물 날 일 많지만 기쁨으로 이겨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