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콤특집 1] 북한에 예수믿는 사람이 이렇게 만다니! (2022.09)

“선생님, 언제 옵니까?
큰일 났습니다.”

늦은 시각 일꾼이 받은 전화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일꾼이 중국에서 가르치던 북한 성도였다.
“선생님, 소식 들었습니까? 북조선에서 온 사람도 코로나 주사를 맞아야 한다며, 절대로 안 잡아 갈 테니 염려 말고 나와서 맞으라고 집집마다 방송을 해대서 다들 나갔댔는데 아니, 글쎄, 주사는 안 놔 주고 주소와 전화번호만 앗아갔지 뭡니까? 여권도 몽땅 거둬 갔습니다. 코로나 끝나고 조선으로 돌아갈 때 준다고 지금 있는 곳을 떠나지 말라는 엄포도 놨습니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잔뜩 겁에 질린 북한 성도의 목소리는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떨렸다. 일꾼 역시 비자가 만료된 채 중국에서 불법 체류자로 돈을 벌고 있는 많은 탈북자들의 신상 정보가 중국 공안에 털렸다는 소리에 온 몸의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그래, 여권을 빼앗겼습니까?”
북한 성도의 비밀 처소가 노출됐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몰려왔지만 일꾼은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물었다.
“저는 안 갔습니다. 선생님도 없고 나 혼자 있는데 어떻게 갑니까? 그런데 조선 사람들이 이리 쉽게 당하는 걸 보니 나 하나 신고해서 잡아가는 건 일도 아니지 않겠습니까? 금방이라도 공안이 들이닥칠 것만 같습니다. 선생님, 빨리 와 주십시오.”
중국 공안이 친 덫에 안 걸렸다는 북한 성도의 말에 일꾼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면서도 빨리 와 달라는 말에는 가슴이 한없이 무거워졌다. 새처럼 훨훨 날아 국경을 넘나들 수 있으면 좋으련만 현장에 복귀하려고 할 때마다 번번이 가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과 심정이 답답했다. 이런 일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북한 성도는 통화할 때마다 빨리 오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잘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곧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 건너랑은 통화했습니까?”
일꾼은 여느 때처럼 북한 소식을 물었다. 물가가 엄청나게 올라 주민들의 사는 형편이 정말 어렵다는 안타까운 말을 계속 들었기에 일꾼은 내심 긍정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랐다.
“어휴, 말도 마십시오. 폭우에 감자며 옥수수가 다 휩쓸려 갔어요. 사람들이 산비탈 소토지를 어렵사리 일궈 놨는데 그게 유실되어 복구하느라 낮 동안 시내가 한산했답니다. 그만큼 심각했다는 증거이지요.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장마당까지 물에 잠겨서 장사도 못 했다고 하네요. 이럴 때는 꽃제비들이 제일 수난당합니다. 장이 돌아가고 곡물이 맺혀야 구걸이라도 할 텐데 이번 난리통에 많이들 굶어 죽었답니다.”
가슴이 먹먹해진 일꾼은 창문 너머 캄캄한 밤하늘로 애꿎은 시선을 돌렸다. 비 오는 길거리에서 주린 배를 움켜쥐고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지쳐서 쓰러진 어린 꽃제비들의 얼굴과 햇감자와 옥수수로 식량을 해결할 요량이었는데 비 피해로 희망을 잃어 버린 가난한 북한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달려가 그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기에 “하나님~” 하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북한 성도와 통화를 마친 일꾼은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북한 선교에 소명을 주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북녘 땅 우리 동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수해로 농사도 장사도 구걸도 할 수 없는 그들을 도와 주옵소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때와 방법을 따라 종으로 북한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굶주린 자들을 먹이게 하옵소서. 그들을 살려 주옵소서. 중국에 나온 형제자매에게도 속히 가서 말씀을 가르치도록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이 이루시는 북한 선교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애절하게 기도하던 일꾼은 깜빡 잠이 들었다. 꿈에서도 일꾼은 중국 쪽 두만강에서 북한을 향해 걸으며 기도하고 있었다. 산을 넘고 또 넘고 어떤 때는 다리를 건너고 동굴을 통과해서 북한 땅에 다다랐다. 오매불망 꿈에도 그리던 곳에 도착했기에 일꾼은 감격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기뻐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차에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한 사람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예전에 중국에서 말씀을 배우고 돌아간 북한 형제였다.
“선생님, 이게 얼마 만입니까? 언제 오셨습니까? 어서 저희 집으로 가십시다.”
형제는 반색하며 일꾼의 손을 잡아 끌었다. 집에는 형제의 가족이 모여 있었다. 그 일꾼은 그들과 복음을 나누고 자녀들에게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식사 후에도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교제하며 대화가 한창 무르익어 갈 즈음, 마당에서 저벅저벅 하는 심상찮은 군홧발 소리가 들렸다. 위험을 감지한 일꾼이 얼른 기둥 뒤로 숨었다. 몇 초 사이로 문이 벌컥 열리고 군복을 입은 간부 두 명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외부 사람이 왔다는 신고가 있다. 어디에 숨겼나?”
“그런 일 없습니다. 여기는 우리 식구만 있습니다.”
형제가 손사래를 치며 발뺌을 했다. 그러나 좁디 좁은 방 안에서 군인들이 일꾼을 찾는 건 시간 문제였다. 게다가 기둥 아래 드리워진 일꾼의 그림자가 감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오라.”
일꾼은 양 손을 들고 기둥 밖으로 몸을 드러냈다. 큰일이라는 생각에 두 눈이 질끈 감겼다. 군인들은 별도의 심문 과정 없이 일꾼을 작은방으로 데려 갔다. 그런데 군인들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너무나 놀라운 것이었다.
“자, 긴장을 푸시지요. 우리도 예전에 중국에 갔다가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세례를 못 받았습니다. 세례를 꼭 받아야 합니까? 그리고 교회 생활이나 신앙 생활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허가 찔린 기분이었다. 일꾼은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이며 한 번 교회를 정하고 세례를 받으면 목숨처럼 섬겨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예배당을 세우면 노회도 조직해야 한다는데 그건 어떻게 만드는 겁니까? 속 시원히 알려 주십시오.”
일꾼은 교회와 노회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고 다음번에 자세히 알려주겠노라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군인들은 보여줄 것이 있다고 일꾼을 어떤 언덕으로 데려갔다. 거기에는 많은 군인이 앉아 있었는데 그들 중에서 예수 믿는 사람을 골라내니 제법 큰 무리가 되었다.

꿈에도 그리던 북한 땅에서

“북한 땅에 예수 믿는 군인이 이렇게나 많다니!”
외마디 비명처럼 일꾼은 큰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자신을 비추는 밝은 형광등 빛과 방 안에 놓인 물건과 가구가 눈에 들어오자 일꾼은 꿈이었음을 직감했다. 생시처럼 너무도 생생했다. 그리고 마치 하나님이 무언가 말씀하시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땅에 하나님의 백성이 많이 있구나! 그들이 전도하고 있구나! 지금까지 씨를 뿌린 것이 헛된 일이 아니었어. 하나님이 계속 일하고 계시잖아? 앞으로 저 땅에 교회가 세워지고 노회가 만들어질 것을 하나님이 꿈으로 보여 주셨어. 어쩌면 내 생에 북한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할 수도 있겠지만 꼭 내 때가 아니어도 뒤를 이어 누군가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갈 거야.”
일꾼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꿈 내용을 곱씹었다. 마치 하나님께서 네가 다시 북한에 들어갈 것이니 북한이라는 푯대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라고 격려하시는 것 같았다.
꿈을 꾸고 얼마 후, 일꾼은 북한에 물건을 보낼 길이 열려서 다량의 식량과 성경을 들여보냈다. 그리고 중국에 있는 북한 성도에게서는 안전한 곳으로 거처를 옮겼으니 염려하지 말라는 연락이 왔다. 마치 꿈 내용을 확증하듯 하나님의 뜻이 하나씩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시는 것 같아 일꾼은 더 없는 기쁨에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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