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국제 사회의 강력한 제재와 코로나19 이후의 국경 봉쇄로 벌써 2년 넘게 자발적인 고립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주민 대다수는 이로 인해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한 지경에 놓였다는 긴박한 소식이 선교 현장 일꾼들로부터 전해지고 있다. 이미 거대한 난민촌이 되어 버린 북한에 급변 사태가 발생해 하루 아침에 국경이 개방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모퉁이돌선교회는 2012년 “통일을 준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구호와 구제, 회복, 재건의 3단계에 따른 12가지 분야별 사역을 세분화해 통일 상황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해 왔다. 그 가운데 특별히 북한 붕괴 상황에서 제일 먼저 현장에 투입되어야 하는 구조 요원을 양성하는 재난구조훈련(IDRN, International Disaster Response Network)을 2012년부터 지금까지 한국, 미국, 중국, 러시아 등에서 실시해 총 2천여 명이 수료했다. 그리고 산불, 홍수 등의 재난 현장에서 고통당한 이재민을 꾸준히 방문해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이번에도 본회 산하기관인 투게더인터내셔널에서 재난 구조 훈련을 받은 6명의 요원과 본회 일꾼 3명이 우크라이나 난민촌이 있는 루마니아로 구호 활동을 다녀왔다. 유엔난민기구(UNHCR)가 집계한 바에 의하면 러시아의 침공을 피해 해외로 탈출한 우크라이나 난민의 수는 6백만 명을 넘는다. 이 가운데 절반 정도는 폴란드로, 나머지 상당수는 루마니아나 슬로바키아 같은 인접국으로 몸을 피했다.
국경을 넘은 우크라이나 난민을 대상으로 구호와 성경을 배달하는 사역을 펼친 이번 활동은 앞으로 북한 긴급 사태 발생 시 적용 가능한 사항을 점검하고 보완하는 기회였다. 참여한 훈련생들이 느낀 점을 정리해서 나눈다.
“매스컴에서 접한 모습만 생각하고 국경 지대인 루마니아 시레트에 갔는데 막상 그곳에는 우크라이나 난민이 거의 없었어요. 저희는 발 디딜 틈 없이 꽉 찬 난민촌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하며 바쁘게 움직이는 걸 상상했는데 정반대였죠. 하지만 기대한 것과 다르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었어요. 오히려 무엇이 다른지 현장 상황을 빨리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서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훈련의 일부일 테니까요.”
우크라이나 구호 활동에 참여한 문호성 회원의 말처럼 루마니아에 도착한 재난구조팀(IDRN)이 처음으로 맞닥뜨린 상황은 휑하게 빈 난민촌이었다. 전쟁 발발 두 달이 넘은 시점에서 키이우를 비롯한 몇몇 우크라이나 지역이 수복되자 민간인이 살기에 아직은 위험할 수 있음에도 많은 우크라이나인이 고향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었다. 하필이면 난민이 빠져나가는 시기에 루마니아를 찾게 된 셈이지만 재난구조팀은 당황하지 않고 우크라이나 내부로 물품 보내는 일에 집중했다.
“‘나는 이걸 할 거야’라고 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그곳에서 가장 필요한 일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계획은 얼마든지 변형되고 수정될 수 있음을 아는 유연성이 현장에서 활동하는 구조 요원이 꼭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죠.”
“저희 생각과 다를 뿐이지 현장에서 할 일은 얼마든지 있었어요. 특히 우크라이나로 보낼 보급품을 정리해서 나르고 적재하는 일 같은 실질적으로 몸을 쓸 인력이 많이 필요했는데, 물품이나 현금 지원은 풍부한 반면 일손은 부족해서 안타까웠어요. 앞으로 통일이 될 때를 대비해서 북한에서 직접 발로 뛸 수 있는 인적 자원을 확보하고 매뉴얼을 미리 정리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명현, 차종민 회원의 말이다. 우크라이나 난민에게 줄 밀가루, 옥수수 가루, 파스타, 식용유, 샴푸, 세제, 기저귀 등을 구입해서 우크라이나 내부로 들여보내는 일은 이번 재난 구조 활동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여기에도 시행착오 끝에 터득한 지혜가 있다고 재난구조팀은 귀띔했다. 처음에는 난민에게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물건을 이것저것 여러 가지로 샀는데 두 번째부터는 우크라이나에서 짐을 받는 사람들이 좀더 효율적으로 분류하고 배분할 수 있도록 물품 종류는 제한하는 대신 대량으로 구매하는 방식을 염두에 뒀다고 한다. 사실 물류뿐만 아니라 이번 일정을 통해 재난구조팀은 구호 활동의 범위를 재점검하는 소득을 얻었다.
“우크라이나에서 피난 나온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들이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사선을 넘나들며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는 남편, 거동이 불편해서 피난길에 오르지 못하고 고향에 남아 있는 할머니, 기억에 자꾸만 떠오르는 폭격으로 죽은 사람들의 잔상, 죽을 고비를 몇 번씩 넘기며 난민 대피소에 겨우 도착한 우크라이나인 피난민들의 고통이 대화 도중에 고스란히 전해졌어요. 그분들은 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염려와 다시 돌아가도 할 일이 없을 거라는 무기력감,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 상황과 앞으로 닥쳐올 종잡을 수 없는 미래 때문에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어요.”
임정옥 회원은 참사를 당한 이들의 트라우마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초기 재난 구조 단계에는 일차적으로 생필품 보급이 요구된다. 이때는 트라우마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아 물자를 공급하는 게 더 요긴해 보이지만,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부분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다.
“물질적인 도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심리적인 도움, 그리고 영적인 도움까지 주는 것을 구조 활동의 영역으로 인식할 수 있는 단체는 기독교밖에 없습니다. 어떤 행태로 북한에 재난이 발생할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트라우마에 개입하는 것은 생각해 볼 만한 문제입니다.”
“코로나가 생기기 이전에 KRIN에서 지원해 트라우마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강사님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치유하는 부분을 이야기하셨어요. 결국 복음으로 트라우마를 치료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이론적으로 배운 내용을 실질적으로 적용하는 방법들을 계속 논의해야 할 것 같아요. 교육받는 걸로만 끝나면 결국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고 세워지지도 않더라고요.”
문호성, 김명현 회원의 의견이다. 굶주림과 공개처형, 폭행, 학대, 강제 노역 등을 경험한 북한의 전 주민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음을 고려할 때,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치유하고 회복하는 사역은 반드시 필요하고 준비되어야 할 영역이다.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기 위해 떠난 루마니아에서의 이번 일정은 여러 모로 복음 통일을 준비하는 사역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었다. 긴급 상황이 발생한 이후로 모든 것을 미루고 대비하지 않는 통일은 북한은 물론 남한에도 재앙이 될 수 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통일을 허락하시는 그때, 즉각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데 필요한 사역의 영역별로 물적, 인적, 영적 자원을 예비하고 훈련해야 한다. 모퉁이돌선교회는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참고하여 활용할 수 있는 『복음통일 매뉴얼』을 준비해서 나누어 왔다. 하루 속히 북한의 굳게 닫힌 문이 열려 갇힌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고, 남북한의 성도들이 함께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기를 고대하고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