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활한 사탄의 공격을 받다
작년 가을, 찌르는 듯한 격렬한 복부 통증 때문에 현지 병원을 찾았다. 담당 의사는 검진을 끝내고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며 췌장암 말기 판정을 내렸다. 사형 선고와 다름없었는데 이상하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한국에 들어가서 수술을 받아야겠기에 며칠간 밤을 새며 사역을 정리하고 비행기편을 예약했다.
떠나기 하루 전날 밤까지도 사역 정리에 매달렸다. 그런데 계속 무리한 탓인지 눈꺼풀은 감기고 몸은 축 늘어졌다. 얼른 책상에 놓인 비타민 보조제 한 웅큼을 쥐어서 입에 털어 넣었다. 삼십여 분이 지났을 때쯤, 입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기 시작했다. 물을 들이켜고 돌아서서 앉으면 또 입이 말랐다. 심한 갈증이 지속되는 상태로 한두 시간 정도 일에 집중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 녹초가 된 몸을 침대에 뉘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침대 위에 있던 내 몸이 갑자기 붕 떠서 1m 가량을 날아가 내동댕이쳐졌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통이 밀려왔다. 그런데도 몸은 굳어져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공간이나 시간의 흐름도 제대로 지각되지 않았다. ‘주님, 이게 뭐죠?’ 하며 속으로 외치다가 겨우 몸을 추슬러 침대까지 기어갔다. 그런데 또 10여 분 후쯤, 나는 침대 다른 편으로 다시 던져졌다. 그제서야 나는 사탄의 공격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즉각적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사탄아, 물러가라.” 하며 떠날 것을 명령하였다. 그러고는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곧바로 곯아 떨어졌다.
아침에 눈을 뜬 건 휴대폰 문자 소리 때문이었다. ‘비행기 탔어요?’ 아내였다. 시계는 오전 10시 30분, 예약한 비행기가 이륙할 시간 30분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혼비백산하여 휴대폰을 확인하니 나를 공항까지 데려다 주기로 한 동료 선교사의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다수 찍혀 있었다. 벨소리를 듣지 못하고 잔 것이었다. 황급히 침대에서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어제 일하던 책상에 놓인 약통에 눈길이 머물렀다. 안에는 진통제가 들어 있었다. 간밤에 진통제를 비타민으로 오인하고 20여 알이나 삼킨 것이었다. 타들어 가는 목마름과 정신을 차릴 수 없는 혼미함이 이것 때문이었다. 잠자는 중에 정체 모를 공격을 받고 치사량에 가까운 진통제를 먹은 것, 나는 이 두 가지 모두가 사탄의 책략이라고 생각한다.
순종의 삶으로 이끌림받다
며칠 후 나는 한국에 도착했고,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집도의는 결과적으로 췌장암은 아니나 장기간 항암제를 복용해야 하는 희귀암이라고 말했다. 선교지에서 췌장암으로 진단 받았을 때 내 안에 떠오른 성경 구절이 있었다.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히 12: 7~8)”이었다. 그리고 기도 중에 하나님은 뱃속의 혹이 암이 아니고 죽을 병도 아니라는 응답을 주셨기에 그동안 사실 내 마음에는 요동함이나 두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새롭게 삶을 결단하는 계기를 가졌다.
그동안 나는 하나님 앞에서 반쪽만 순종하는 불충성의 사람이었다. 나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일을 그저 상식 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선교사였다. 그나마도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라는 일말의 양심은 있었지만 온전하게 순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하나님은 나에게 선교사로서의 분명한 정체성과 삶을 요구하셨다.
양단 간의 결단을 내리고 나는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버렸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모든 재능과 은사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선교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앞으로 집중해야 할 사역에 대해 말씀하시기 시작하셨다. 그것은 나로부터 나올 수 없는 것이기에 오늘도 나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며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따라 하루를 살아간다. 놀라운 것은 실수가 없는 완전한 하나님께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사역 2막을 여시고 순종의 삶으로 이끌고 계시다는 것이다.
건강을 위해 체중을 감량하는 과정에서 병원 검진을 받게 하시고, 췌장암 말기라는 의사의 소견에 급히 귀국해서 수술하도록 도우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한국에 와서 검진하고 수술하면서 수많은 동역자들의 기도와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무엇보다 내 열심으로 하던 사역의 중심에서 돌이켜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과 은혜로 채워주신 크고 놀라우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리고 작년 12월 7일 새벽에 아내와 같이 기도할 때, 주님께서 “이제 OO으로 갈 준비를 시작해라. 그곳이 2기 사역의 베이스가 될 것이다. 그곳은 영적 전쟁의 최선봉이다. 그곳에서 네가 선교사들을 훈련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다. 주님의 말씀을 아내와 함께 나누고 OO에서 어떤 방법으로 주님의 뜻을 이룰 것인가를 기도하며 자료를 수집하고 사역을 준비해 가고 있다. 2022년을 시작하는 이때, 선교 사역 2막을 시작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만을 기대한다.
김화평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