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콤특집 2] 임마누엘의 땅 예루살렘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밝히며

예수님이 나신 땅에서 맞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며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임마누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새삼 느낀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외면하는 유대인과 아랍인의 어둠이 복음의 빛으로 밝혀지기를 소망한다.

지난 9월 28일, 길었던 1년 7개월의 기다림을 끝내고 하나님이 부르신 땅 이스라엘에 도착하였다. 부르심이 있는 땅이어서 그랬을까? 기나긴 기다림 끝에 얻은 승전보와 같았기에 더욱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항공사의 실수로 프랑스에 남겨진 짐을 찾느라 2시간을 헤매야 했다. 3일 뒤에나 짐을 보내주겠다는 서류를 받아 들고 공항에 길게 늘어선 줄 끝에 합류해 PCR 검사를 받았다. 드디어 공항 밖을 빠져 나와 인파 속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을 때의 안도감이란 감사와 함께 터져 나오는 모종의 답답함을 날리는 깊은 한숨 같았다.

마중 나온 선교사님에게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 어떻게 하셨느냐고 감히 물을 수 없었다. 그의 고통이 오늘날 내게 은혜가 되었을 뿐이다. 그 은혜가 충분하게 부어졌기에 앞으로 고생 문이 훤하다는 선교사님의 말씀을 웃어 넘겼다. 그런데 그날 이후 ‘거절의 땅’이라는 별명을 붙여도 될 정도로 나에게는 익숙지 않은 거절감이 매일 찾아왔다.

계좌를 개설하러 간 은행에서 직원은 내가 히브리어를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계좌를 열어 줄 수 없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다른 직원이 와서 도와주었지만 처음 직원과의 실랑이가 이미 나의 진을 빼놓은 상태였다. 한국 같았으면 한 시간이면 충분히 만들고도 남았을 체크카드를 일주일 후에나 찾으러 오라고 했다. 집세 자동 이체를 신청하려면 또 어떤 산들을 넘어야 할지….

운전 면허증을 발급할 때는 또 어떠했나. 예약 후에 방문해도 줄을 서야 했고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직원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으며 그 직원은 운전면허경력증명서라는 난생 처음 듣는 서류를 떼 오라고 요구했다. 서류가 없으면 다시 시험을 보라는 엄포를 놓고 유유히 사라지는 직원의 뒷모습을 나는 멍하니 바라봐야 했다.

광야 기도회를 다녀오니 11년 된 내 차의 후면이 박살 나 있었다. 블랙박스나 CCTV가 없어서 누가 그랬는지 알 길이 없었다. 사람이 다치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수리 비용을 주님께 올려드리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복음, 어둠을 밝히는 그리스도의 빛

이스라엘에 이제 갓 한 달 넘긴 어린아이와 같은 내가 고생한 것이 무엇이랴. 개척자로서 이 땅에서 몇 년을 버틴 선교사님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학교에 다녀야 비자가 나오니 사역과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그들의 노고를 어찌 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하루 아침에 비자가 거절되어 나간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한두 번 들은 것이 아니다.

외로움, 불친절, 부당한 대우, 가족의 아픔과 슬픔을 묵묵히 받아 낸 그들의 모습이 지금 이스라엘의 복음을 위한 기초석이 되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영혼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기는 선교사님들의 열심이 하늘에 쌓아 둔 귀한 보석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선교 센터에서 수요 기도회를 마치고 선교사님과 다과를 나누는 중에 예루살렘과 거리가 먼 한글어학당에 유류비와 체력 부담 때문에 교사로 보낼 사람이 없다고 탄식하셨다. 안타까워하시는 선교사님과 내 눈이 때마침 마주쳐 선교사님은 ‘네가 가라’고 하셨다. 나는 재정도 체력도 하나님이 주실 것을 믿는다며 큰소리쳤지만 내심 한글어학당 사역으로 복음이 전해질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되었다. 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임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예루살렘에서 150km 떨어진 지역의 한글어학당에 도착했다.

그런데 사역을 감당하러 간 첫 날, 그만 심장이 멎는 듯하였다. 한 아랍 청년이 성경이 궁금하다며 가방에서 성경을 꺼내는 것이었다. 그의 담대한 행동은 언어와 문화를 통해 복음을 전달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이자 열매였다. 10년 전 제천에서 전도사로 있을 때 스리랑카 청년 7명을 모아 놓고 예배하며 한글을 가르친 경험이 나에게 있었기에 이번 사역이 가능했음을 생각할 때 인생의 어느 한 부분도 놓침 없이 정확하게 계획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이 오늘도 이스라엘의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에게 동일하게 역사하고 계심을 깨닫게 된다.

오늘 서둘러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하였다. 11월 초이니 빠른 감이 없지 않지만 마음이 급했다. 예수님이 나신 이 땅에서의 첫 크리스마스 맞이 준비를 하나님을 향한 신앙 고백으로 드리고 싶어서였다. 내가 그동안 경험한 완악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깨달았다. 그들의 모습이 내 모습임을 인정하며 임마누엘의 은혜, 그 사랑의 깊이와 높이와 길이와 너비가 어떠함을 차마 가늠할 수 없다고 하나님께 이야기하는 내 고백의 행위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여전히 부인하며 외면하는 유대인과 아랍인에게 복음이 어둠을 밝히는 이 크리스마스 트리 전구처럼 전해지기를 바란다. 그들의 어두운 눈을 밝히시는 그리스도의 빛이 들어가기를, 또한 어린아이들과의 관계가 한국 문화를 통해 맺어지고 깊어져서 복음이 전해지기를, 그리고 고생과 환란으로 눈물 뿌린 선교사들의 얼굴에 그리스도의 꽃 향기가 나기를, 그래서 오직 그리스도만이 이 땅에서 존귀함을 받으시기를 원한다.

김나훔 선교사

SNS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