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저를 어떻게 악에서 구하셨는지를 나누려 합니다. 꽤 오래전에 저는 특정 영역에서 반복적인 죄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성공한 목사였습니다. 설교하고, 상담하고, 가르치고 격려하는, 외부의 모든 것이 다 좋아 보였지만 저의 내면, 생명의 근원은 엉망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아내와 딸이 저를 떠났습니다. 저는 절망했습니다.
절망은 우리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합니다. 45분 정도 하나님과 이야기하며 저의 죄와 시험의 뿌리가 아버지를 향한 쓴뿌리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향한 미움을 영적으로 합리화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이런 일을 당해도 싸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화를 내거나 쓴뿌리를 오래도록 품는 것은 옳지 않았기에 저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아버지를 용서합니다. 저에게 준 상처의 결과들로부터 아버지를 풀어주겠습니다. 그의 삶을 멋지게 만들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러나 제 마음은 여전히 쓴뿌리로 가득했습니다. 아마 충분히 기도하지 않아서일 거라고 생각하고 저는 다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아무것도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하나님께 다시 물어야 했습니다. 제가 영적인 귀를 열었을 때 주님은 “너 정말 나쁘구나.”라고 정죄하지 않으시고 “네 삶의 가장 큰 축복이 무엇이지?”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아내에게 버림 받은 상황에서 축복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저는 정말 다급했기에 영적인 체하는 대답 대신 진짜 답을 말하기 위해 1~2분 동안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주님, 정직하게 말해서 저에게 있어 가장 큰 축복은 구원받은 것입니다. 적어도 그로 인해 우리 세 가족이 천국에서 하나님과 다시 만나게 될 것이고, 언젠가는 서로 화해하고 모든 것이 용서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이 없다면 그런 소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저의 말에 주님은 매우 고요한 목소리로 다시 물으셨습니다. “정말이야? 그럼 어떻게 그 구원이 너에게 왔지?” 저는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주님, 집에서의 생활은 아버지 때문에 너무 불행했습니다. 저는 평화로운 피난처를 찾기 위해 집을 나가 교회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아버지 역할을 해 준 어른들과 친형제보다 더 가까운 친구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구원을 찾았습니다.” 그러자 “가브리엘, 너에게 쓴뿌리를 갖게 한 대상이 네 삶에 큰 복을 가져다 준 도구가 되었다고 말하는 거니?”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일어난 일 중에서 가장 끔찍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저는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이보다 더 나쁜 일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들 예수를 죽여서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상함이나 아픔보다 더 큰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저와 제 아내는 오랫동안 근친상간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상담했습니다. 저는 그분들에게 “당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 되었을까요?”라는 매우 어려운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면 몇 분 후에 “만약 제 삶에 끔찍한 비극이 없었다면, 절대로 예수님을 찾지 않았을 것입니다.”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저의 두 번째 질문은 이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이라면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여러분이 행복한 성장기를 보내고 지옥으로 향하는 것? 아니면 삶에서의 끔찍한 고통과 비극을 통해 구원으로 들어가도록 이끄는 것?”
로마서 12장 21절 말씀으로 말씀을 맺겠습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선을 행함으로 악을 이기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원리는 매우 분명합니다. 당신 스스로 삶에서 악을 밀어낼 수 없습니다. 제 마음을 공허하게 만들던 아버지에 대한 쓴뿌리를 끊어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을 통해 죄가 계속 채워지고 있음에도 떨쳐버릴 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그저 이렇게 고백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선으로 악을 이겨야만 했습니다. 저는 감사가 쓴뿌리를 밀어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제가 옳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죄였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제 아버지의 거친 성격으로 인해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그 때문에 제가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쓴뿌리나 미움의 대상이 실상은 제 삶에 가장 큰 축복의 도구였습니다. 그것이 구원의 열쇠였습니다. 고통보다 축복의 무게가 훨씬 더 컸습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쓴뿌리(아픔)와 그것으로 인한 공허함이 생기고 있는지 돌아 보십시오. 사단은 그 부분을 가짜로 채우려 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하나님께서 악에서 구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가브리엘 선교사
(63회 모퉁이돌 선교 컨퍼런스 설교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