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콤특집 3] 북한에 필요한 것은 예배와 영생입니다!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 1:12~16)

사도 요한이 예수님에게 계시를 받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3년을 살았고 여행도 했습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분이 기적을 행하고 하늘로 들리시는 장면도 목격했습니다. 그럼에도 사도 요한은 이같은 예수님의 모습을 이전에 본 적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본 사도 요한의 반응은 어떠했나요?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계1:17) 저는 우리가 이전에 보지 못한 예수님을 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바라기는 북한에 있는 수천만의 사람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주님을 보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볼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도 요한이 그의 발 앞에 엎드려 죽은 자같이 되었다는 말은 명확하게 예배를 했다는 의미입니다. 예배는 요한계시록 전체를 관통하는 큰 주제입니다. 천사, 피조물, 흰 옷 입은 많은 사람, 증인, 순교자, 모든 족속과 나라들의 언어 등에서 예배가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우리가 북한에 예배를 가져가지 않는다면 과연 그에 상응하는 어떤 가치 있는 것을 가져갈 수 있을까요? 북한에는 우리가 경험하는 예배를 30초도 드릴 수 없는 지체들이 있습니다. 존 파이퍼 목사는 “예배가 없는 곳을 위하여 선교가 존재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소수 기독교인들만이 공산당 노래에 비밀스럽게 찬양 가사를 붙여서 예배합니다. 우리는 예배가 없는 그곳에 하나님의 임재를 가져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도 요한이 보았던 하나님과 예수님은 그가 창조한 이 지구의 모든 구석 구석에서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 보내기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예배와 하나님의 임재를 북한에 가져가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모습 속에 있는 주님의 임재를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보여줄 수 없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하고 있는 것일까요? 예배가 먼저입니다.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요한계시록 6: 7~8)

요한계시록에서 살펴 볼 두 번째 주제는 고난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팬데믹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만약 코로나19 바이러스 치사율이 100%라면 어떨지 상상해 보셨습니까? 저는 이번 팬데믹 상황이 요한계시록을 미리 맛보게 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저는 가족 중에 혼자 살아남은 한 북한 자매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녀의 부모, 이모, 삼촌, 조부모, 모든 친척들이 굶어 죽었습니다. 그 자매는 간증을 5분 이상 지속하지 못하고 주저앉아 울었습니다. 여러분은 고난을 준비하고 계신가요? 북한은 점점 더 큰 환난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신이라고 주장하는 적그리스도를 예배하는 척하도록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그 적그리스도는 기독교를 싫어하고 살아 숨쉬는 모든 기독교인을 전멸시키고 싶어합니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요한계시록 21: 23~27)

예배를 의미 있게, 고난을 의미 있게 만 하는 단 한 가지는 영원입니다. 북한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 하나를 짧게 나누겠습니다. 약 29명의 북한 기독교인들이 지하에서 살다가 보위원들에게 발견되었습니다. 자녀들과 부모들을 떨어뜨려 놓고 부모들에게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으면 자녀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보위원들은 매우 화가 났습니다. “모르겠어? 예수를 부인하지 않으면 당신 자식들을 목매달아 죽일 거야!” 그러나 부모들은 자녀들을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잠시 후에 너희들을 만날 거야.” 부모님들은 영원을 이해했습니다. 자녀들이 목매 달려 몸부림치고 소리 지르는 고난을 어떻게 견뎠을까요? 또 잠시 후에 겪은, 발끝에서부터 다리 쪽으로 굴착기가 천천히 굴러가는 고통을 어떻게 견뎠을까요? 그들은 몇 분 후에 일어날 일이 영원임을 알았습니다.

자녀와 손자들이 굶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기뻐할 수 있지요? 약이 없어서 죽거나, 친척들이 2년 반 정도밖에 살지 못하는 노동교화소로 보내지고 15년 형을 언도 받았다면 과연 기뻐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 영원을 볼 수 있다면, 예배를 멈추지 않고 주의 임재 속에 거한다면 온전히 기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땅에서 말입니다. 왜냐면 천국의 기쁨은 영원하고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의 삶은 불의함이 가득합니다. 여러분 할아버지의 가벼운 친일 행적 때문에, 그것이 북한을 위한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가족 3대가 15년 동안 감옥에 가야 한다면 그 부당함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당신의 아기가 품속에서 천천히 굶어 죽어 가는 동안 여러분이 느낄 부당함은 어느 정도일까요?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의 위대한 지도자는 그의 음식을 북경에서 비행기로 날라 먹고 있다면 말입니다.

이제 마무리하면서 22장을 보겠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요한계시록 22:12) 정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 속에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에 영생의 희망을 가져 가길 원합니다. 그것 없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 2021 KRIN 가브리엘 선교사 설교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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