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콤 특집1] 지금은 중국 교회와 함께 선교할 때입니다! (2023.3)

지난 30~40년간 중국 교회는 끊임없는 핍박과 탄압에 직면했지만 동시에 유례없는 부흥의 시기를 지나왔다.
오롯한 하나님의 은혜였다. 수많은 영혼이 주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중국 부흥의 선봉에는 한족 교회가 있었다. 한족이 사는 마을과 도시마다 교회가 들어섰고, 교회가 없는 지역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복음화가 이루어졌다. 중국 교회의 폭발적인 부흥의 역사의 산증인이자 고난의 한복판에서 믿음을 지켜 온 중국의 00사역자는 이제 한족 교회가 일어나 중국 전역에 흩어진 55개의 소수민족과 열방으로까지 나아가 선교를 감당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중국 교회가 선교의 대상이 아닌 선교의 주체로서 세계 교회와 함께 빛을 발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가 구술한 내용을 그의 간증과 함께 정리해서 나눈다.

엄정한 정치 현실에도
신앙만을 붙든
믿음의 선배들

저는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러다가 대학에 와서 친구의 전도로 교회에 가게 됐습니다. 신기한 것은 예배당이란 곳에 처음으로 가서 앉았는데 불현듯 “앞으로 내가 전도사가 되겠구나. 내가 저 강단에 서게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때만 해도 유명한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던 터라 “세상에서 성공하고 명예를 얻어야지. 사회적 지위가 없는 전도사는 안 돼.”라며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거부했습니다.
어느덧 예배가 시작되고 난생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 귓가에 들려오는데 무슨 뜻인지는 통 모르겠으나 찬송을 하고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하는 가운데 여태껏 살면서 느끼지 못했던 위로를 받으며 많은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렇게 교회에 간 첫날 저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저를 교회로 인도한 친구가
“예수님을 믿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주저없이 “믿는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날 내 인생을 내가 지배하며 살겠다던 자아를 하나님께서 깨셨습니다. 철옹성처럼 단단히 문빗장을 걸어잠근 자아에 균열이 생기자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도, 보란듯이 성공하겠다는 꿈도 사라지고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며”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가난한 심령이 되어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몇 달 후 겨울방학이 되어 한국 선교사님과 함께 만주 지역을 둘러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곳곳을 다니며 제가 받았던 감동은 문화대혁명이라는 엄연한 정치 현실 속에서도 정말 많은 분들이 신앙을 지켜온 것에 대한 경외감이었습니다. 혼자 예배를 드리고 밤중과 새벽에 가만히 기도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믿음이 흔들리지 않은 신앙의 선배들이 무척이나 대단해 보였습니다.

천하의 겁쟁이가
용감해질 수 있는
놀라운 변화

여행에서 돌아와 일대일 제자 양육을 받으며 하나님과 신앙에 대해 계속해서 알아갔습니다. 그러던 차에 어느 날 선교사님이 제 이름을 부르시더니 “영생을 얻었습니까?”라고 물어보셨습니다. 그건 제가 알 수 없는 영역이라고 판단되어 모르겠다고 답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하고 다시 질문하셨습니다. 저는 “예,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선교사님은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이미 영생을 얻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마치 제방에서 물이 터져 나오듯 제 마음에 영생의 기쁨과 구원의 확신이 샘솟았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무서움이 많고 죽음을 무척 두려워하던 겁쟁이였습니다. 밤에는 형이나 동생 없이 밖에 나갈 엄두도 못 냈습니다. 그런데 영생을 얻었다는 확신이 들자 “나는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 나는 죽을 준비가 됐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사람은 사고, 질병, 노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한 번은 죽지 않습니까? 기왕에 죽을 바에야 하나님을 위해서 죽는다면 얼마나 영광스러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하의 겁쟁이가 이렇게 용감해지다니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저에게 영생이 확실한 사실로 각인됐습니다.
또 그때 느낀 점 하나는 “하나님께서는 정말 나를 선택해서 전도사로 쓰기로 작정하셨구나. 만약 내가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이 작정하신 길을 걷지 않는다면 나이 칠십이 되어도 죽을 수가 없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다는 사실이 너무나 강하게 다가왔기에 저는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하기로 결단했습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를 하나님의 종으로, 전도사로 불러 주셔서 인생을 하나님을 위해 살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할 때 성령 충만이 저에게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마음속에 가득 찼고 기쁨과 자유가 넘쳤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제 인생의 주인이 되셨다는 구원의 확신이 들었습니다.

부흥의 황금기를 지나
중국 본토에
뿌리내린 기독교

하나님이 부르신 것을 확인하자 곧바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몇 명으로 시작한 교회는 곧 천 명이 모이는 규모로 불어났습니다. 목회자 개인의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당시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중국 교회가 성장하는 시기였습니다. 농촌 교회는 1970년대 후반부터, 도시 교회는 1980년대 후반부터 부흥의 황금 계절을 맞았습니다. 중국 농촌에서부터 도시에 이르기까지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또한 각 마을마다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1989년에 발생한 천안문 사태는 중국 사회는 물론 중국 도시 교회에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중국 지식인들이 세상적인 지식에서 빠져나오는 시간이었습니다. 대학생을 비롯한 수많은 지식인들이 미국 문화의 배후에 있는 기독교에 대해 굉장한 호감을 갖고 접근하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는 교회에 정기적인 모임이 생기는 족족 사람들이 모여드는 시기였습니다. 평생 교회의 ‘교’ 자는커녕 예수님의 ‘예’ 자도 못 들어본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합니다”는 말에 눈물을 흘리고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습니다. 대학생들은 자발적으로 기독교 모임을 만들고 그 모임이 추후에 교회로 발전했습니다. 대학생뿐만 아니라 대학 교수,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엘리트들이 교회에 와서 교인으로 등록했습니다.
지난 30~40년 동안 중국 교회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놀라운 부흥과 성장을 경험했습니다. 핍박 중에도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한다는 신앙의 원리를 고수하며 인내했기에 몇십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기독교가 중국 본토에 뿌리를 박았습니다. 기독교는 더 이상 서방 종교가 아닌 중국인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중국에만 400여 미전도종족이있습니다

제 책상 앞에는 작은 중국 지도가 있습니다. 평원, 고원, 분지 같은 중국의 지형 특징이 잘 드러나는 지형도인데 중국의 복음화 현황 또한 직관적으로 잘 보여줍니다. 지형도의 동부는 주로 평야 지대로 한족이 거주하는 지역입니다.
하루는 이 지도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자니 문득 중국 동부의 교회들이 부흥했다는 사실이 눈에 띄었습니다. 중국 교회의 부흥은 사실상 한족 교회의 부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족이 사는 지역 치고 교회가 없는 곳을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베이징, 상하이와 같은 큰 도시에만 몇백 개의 교회가 세워져 있고 시골의 경우에는 비록 마을마다는 아니어도 적어도 진이나 향 단위에 교회가 들어서 있습니다.
한족 이외에도 여러 민족이 중국의 광활한 지역에 분포해서 살아갑니다. 소수민족의 일부는 수천 또는 수만 명이지만 많게는 백만, 심지어 천만 명이 넘는 민족도 있습니다. 중국 정부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중국에는 56개의 민족이 존재합니다.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을 합쳐서 56개 민족이라고 하는데, 선교학적인 관점에서는 490여 개의 족속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들의 90%가 미전도종족입니다. 중국 소수민족은 대부분 복음을 듣지 못했고, 비록 복음을 들었다 해도 교회가 없거나 그리스도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성숙한 일꾼이 없는 곳이 태반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장에서 주님은 ‘모든 족속’에게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19절에 등장한 ‘족속’의 의미를 깊이 있게 생각할 때 한족 교회가 자국의 소수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자기 지역에서 자기 민족에게 가는 것은 지역 교회가 감당할 당연한 본분이라 할 것입니다.
부흥한 한족 교회가 미전도종족인 소수민족 선교를 책임져야 합니다. 한족이 사는 지역에는 곳곳마다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미 복음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성장할 대로 성장한 한족 교회가 선교를 위해 일어날 시기가 무르익었습니다. 더 이상 선교를 받는 교회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선교하는 교회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중국선교가 아닌
중국 교회와 함께 선교하자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자국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동시에 “모든 민족”을 향한 선교 사역을 병행하는 것입니다. 저는 중국 교회가 첫째는 중국의 미전도종족인 소수민족을 향해, 둘째는 세계 선교를 위해 나가야 한다는 성령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현재 중국 교회가 그러한 선교를 감당할 만큼 성장하고 성숙했는가를 자문할 때 지난 3년간 ‘미션 차이나’ 선교 대회를 통해 중국 교회의 선교 의식이 강화되었습니다. 또한 최근 몇 년간 초교파 선교 기관과 선교 훈련이 늘어났으며 수백 명의 형제자매가 선교에 기꺼이 헌신하고 있습니다. 타문화 단기선교 역시 교회에서 점점 보편화되는 추세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중국 교회가 선교를 위해 준비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입니다.
중국 교회, 특별히 한족 교회가 힘을 합쳐서 “모든 민족”을 복음화할 때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새로운 종교사무조례의 시행으로 탄압받는 지금 과연 선교가 가능한가 하고 반문합니다. 중국 도시 교회와 시골 교회가 침체된 상태인 것도 이런 발언에 힘을 싣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예루살렘 교회가 박해를 받음으로 신자들이 어디에서든 말씀을 전파할 기회를 얻었다는 사도행전의 기록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권의 박해가 있는 지금이야말로 교회가 선교할 적기일 것입니다.
지금은 “중국을 선교하자”가 아닌 “중국 교회와 함께 선교하자”가 타당한 구호라고 생각합니다. 해외 선교사들과 중국 교회가 손잡고 미전도종족으로 가야 합니다. 선교는 소수민족, 즉 중국 미전도종족에게서 멈출 수 없습니다. 해외에 있는 수많은 미전도종족에게로까지 미쳐야 합니다. 열방 선교는 주님의 지상명령이기에 오랜 세월 하나님의 은혜로 성장한 중국 교회가 오늘의 책임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열방을 향한 선교의 비전에 중국 교회가 세계 교회와 동참해서 실제적인 행동으로 반응할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중국 교회를 위한 여러분의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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