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콤특집 1] 성경 배달 현장에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2024. 3)

1970년대 후반, 중국의 개혁개방이 시작되던 시기에 중국 내부에서는 성경책을 요구하는 성도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당시에는 외국인들이 중국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단체 관광밖에 없었습니다. 관광객의 일원으로 섞여서 중국을 여행하는 것만이 유일했습니다. 그리고 여행 시에는 꼭 중국인 인솔자를 대동해야 했는데, 이로써 중국 정부는 외국인 관광객을 감시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짧은 일정으로 중국을 다녀오는 것이었지만 저희는 가볍게 여행하지 않았습니다. 과연 사람이 들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무거운 가방을 들고 중국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가방에는 성경책을 가득 채워서 말입니다.

이렇게 가져간 성경책은 현지 중국인들의 손에 직접 전달이 됐습니다. 지금처럼 휴대폰이나 문자, SNS가 있던 시절이 아니기 때문에 성경을 전달받는 사람과는 우편으로 사전에 연락을 취하는 과정이 필수였습니다. 어느 호텔 혹은 어디 커피숍에서 몇 날 몇 시에 만나자라는 약속을 미리 정하고 움직여야 했습니다.

많은 경우 성경을 배달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은 일면식이 없었습니다. 서로 만난 적이 없고 사진도 없지만 편지로 주고받은 정보만 믿고서 중국 대륙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아주 먼 거리를 이동해 성경책을 받아갔습니다. 그때는 중국에 외국인이 많지 않아서, 중국 성도들이 저희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어떤 중국인이 기독교인인지 구분할 수 없기에 상대방에게 사전에 특정 색깔의 모자를 쓰는 등의 표시를 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중국으로의 성경 배달은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성경을 배달하는 중 있었던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려 합니다. 한 외국인이 성경책이 잔뜩 든 커다란 가방을 끙끙 대고 끌면서 중국 국경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그만 세관에 붙잡혀서 성경책을 몽땅 압수당했습니다. 그 외국인은 너무 상심이 되어 “하나님, 왜요! 왜죠? 왜 제가 걸려야 하나요?” 하고 탄원하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다음날이면 성경책을 받기 위해 저 멀리 북쪽에서부터 몇 날 며칠을 기차를 타고 오는 중국 목사님을 만나야 하는데, 이제 빈손으로 그 목사님과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기도를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세관 직원들이 가방에서 성경책을 한 권씩 꺼내서 밖에다 쌓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는 울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왜 여기까지 애써 가져온 성경책을 빼앗겨야 하나요.”

그는 호텔에 도착해서도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엎드렸습니다. “왜, 왜,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죠?” 흐느끼며 기도하는 소리가 점점 커졌습니다. 그러기를 20여 분. 똑. 똑. 똑. 숙소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누구세요?”
눈물 자국을 훔치고 문을 연 그의 눈앞에 외국인 두 명이 서 있었습니다.
“저희는 호주에서 왔어요. 조금 전 세관에서 성경책을 빼앗기셨죠? 드릴 말씀이 있는데 잠깐 들어가도 될까요?”
방에 들어온 호주인들은 자초지종을 털어놓았습니다.

“하나님이 중국에 성경책을 배달하라는 마음을 주셔서 순종해서 왔는데 막상 중국에 도착하고 나니 누구에게 줘야 할지를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하나님께 묻고 있었는데 당신이 성경책을 빼앗기고, 국경에 성경책들이 쌓이는 모습을 봤어요. 저희는 당신이라면 누구에게 성경책이 필요한지를 알 거라고 생각하고, 여기 호텔까지 쫓아왔어요.”

비록 한 명은 성경책을 빼앗겼지만, 하나님은 다른 두 사람이 가져온 성경책을 보존되게 하셔서, 두 배로 많은 성경을 중국에 공급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중국 성도들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성경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성경을 보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중국이 변화하던 그 시기는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길에는 아스팔트가 깔리지 않았고, 먼 거리를 이동할 때는 기차를 탔습니다. 저희가 중국 내에서 성경책을 운송할 때에도 기차를 이용했습니다. 가령 A 지역에서 B 지역으로 성경책을 보낸다면, 일반 짐인 양 포장한 성경을 기차에 실은 다음, 받는 측에 성경책을 적재한 짐 칸 번호를 알려주어서 직접 수령하게끔 했습니다.

한 번은 저희가 보낸 물건이 성경책이라는 사실이 공안에 노출된 적이 있었습니다. 도착해야 하는 목적지까지는 성경책이 안전하게 갔지만 아무도 찾을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성경책을 가져가면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신고하는 꼴이 되어, 감옥행을 면치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공안들은 눈에 불을 켜고 누가 짐을 찾으러 오는지 24시간을 감시했고, 성도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었습니다. 하루, 이틀, 일주일, 이주일의 시간이 야속하게 흘렀습니다. 그런데 그때 한 여자 목사님이 용감하게 나섰습니다. 그분은 성경책을 가져갔고, 공안에 붙잡혀 3년 형을 언도받았습니다.
처벌이 두렵지 않았을까요? 아닙니다. 그분은 사람들이 성경책을 읽지 못해서 영원히 지옥에 가는 것보다 자신이 감옥에 3년 동안 갇히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영생을 본인의 안위보다 소중히 여긴 것입니다. 이렇듯 성경 배달에는 언제나 난관이 따랐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은 살아서 움직이고 역사하고 계셨습니다.

성경 배달 방법은 항상 변화합니다. 환경이 매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과거 한때는 성경을 인쇄한 종이 뭉치를 해외에서 들여와서 중국 내부에서 책으로 묶는 작업을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완성된 성경책은 수많은 중국 성도들에게 배달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마지막 제작 공정을 중국에서 하기 때문에 발각 위험이 컸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당시에 전화 받는 게 두려웠습니다. 누가 잡혔다는 소식을 들을 것만 같아서였습니다.

몇 년 후, 우려하던 일이 결국 터졌습니다. 공안이 공장에 곧 급습할 거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희는 신속하게 가지고 있던 성경책들을 다 반출하고 공장에 있던 기계들도 모두 다른 곳으로 내보냈습니다. 다행히 빠른 의사 결정과 움직임 덕에 어느 누구도 감옥에 가지 않았고, 성경책과 기계도 유실 없이 보존되었습니다.
중국에 관련 공장을 다시 세울 수는 없게 됐지만, 중국 안에 있던 물품과 비품은 안전한 곳으로 옮겨서 사역을 재개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를 더 큰 성공으로 바꾸는 분이십니다. 모퉁이돌선교회와 동역하면서 저는 이런 경험을 여러 번 했습니다. 위험한 순간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명령에 순종하는 모퉁이돌선교회와 함께 성경을 배달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도 여전히 북한과 중국의 성도들에게 성경이 필요합니다. 2024년 통일 이후를 준비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고난 중에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에게 전해져야 합니다. 이 사역이 중단없이 평양에서 예루살렘까지 각 민족의 언어로 성경이 준비되어 보내지기를 기도하고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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