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둥반도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우루무치를 사역 때문에 방문한 일도 있었습니다.
쑥 내미는 성경을 보았습니다.
“당신이 보낸 성경이지요?”
말 없이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태국에서도 한 중국 자매를 만났습니다.
예수를 모르던 그녀는 친구가 준 성경을 보고 중국에서 예수를 믿게 됐다고 합니다.
누가 이 중국 깊은 구석까지 성경을 보냈는지 늘 의아했답니다.
세월이 흘러 태국에 유학을 왔다가 저를 소개받았습니다. 그 자매는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성경 한 권이 배달되어 성도의 손에 쥐어진 이야기.
제 설교를 듣고 예수를 믿게 된 이야기.
아니, 선교사가 되어 수십 년을 주의 일꾼으로 살아가는 이야기.
티벳에서 만난 중국인을 통해 “당신을 알아요”
했던 스코틀랜드에서의 한 사람.
전 세계 구석 구석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만나는 것처럼 천국에서도 만나겠지요?
다니엘기도회의 제 설교 동영상을 보고 지금도 연락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유튜브를 보고 헌금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주머니에 헌금을 넣으며 “성경책 값이에요”,
“북한 예배당 건축비에요” 하는 분들.
평양 근처에 예배당 하나, 황해도 어디쯤에 훈련원 하나, 저의 어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출생지인 소래에 교회 세우기를 꿈꿉니다.
복음이 1907년처럼 뜨겁게 부흥의 불길로 태워진다면 가능하겠지요?
북한 땅에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 예루살렘까지 함께 가는 그날을 기도하고 기다립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 위해 성경책을 보냅니다.
지하교회를 세우고 여전히 세웁니다.
신학교를 운영합니다.
예배당 건물을 짓습니다.
그날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 할 일을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은, 여러분의 하나님은 살아서 역사하십니다.
무익한 종 이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