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학습을 다녀와서] 북한에 갈 수 있는 그 날이 올해면 좋겠습니다 (2026. 9)

모퉁이돌선교회에서 들은 이 말이 제 귓전을 때렸습니다. 아니,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만 같았습니다. 북한에서 이곳에 온 지 몇 년이 지났건만, 북한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저 맥없이 앉아 있던 저에게 너무나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북한어 성경을 어떻게 배달하는지 방법을 알아보다 북한선교훈련을 알게 되었습니다.
12주 과정의 북한선교훈련은 북한 출신인 제가 미처 알지 못하던 북한에 대해 자세히 듣는 기회였습니다. 무엇보다 북한을 향한 남한 성도들의 귀한 마음을 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훈련 후에는 북한 접경 지역 가까운 곳들을 방문하는 현장학습을 떠났습니다. 같이 가는 팀원 모두가 긴장 속에서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렇지만 특별히 저는 주님의 이름을 더욱 더 간절히 불렀습니다. 최근 북한 이탈 주민들이 공안에 체포되어 여권, 신분증, 휴대폰 등을 빼앗기고 북송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는 담당 형사님의 말이 떠올라 겁도 나고 무서웠습니다. 게다가 제가 배달을 자청했던 성경책까지 가지고 있으니 입국심사대 앞에 선 제 몸은 사시나무처럼 떨렸습니다.
“혼자 왔어?”
입국 심사관이 번역기를 돌려 물었습니다.
“네.”
“어디로 가?”
“장, 백두산.”
깐깐해 보이는 심사관의 질문에 갑자기 머리가 하얘져서, 장백산이라고 말하려다가 백두산이라고 얼버무렸습니다. 혹시라도 내가 탈북민인 걸 눈치 채지는 않았는지 마음 졸이며 기다리는데 잠시 뒤 문이 열렸습니다. 저뿐 아니라 팀 전원이 무사히 통과했고 성경책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순적한 출발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본격적인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가는 곳마다 북한 땅이 불과 몇 미터 앞에서 펼쳐졌습니다. 유년 시절을 보내며 오가던 추억이 깃든 고향 땅. 중학교를 마치기까지 살던 곳. 집 한 채, 나무 한 그루도 기억이 생생한 강변의 작은 마을은 달라진 것 하나 없는 옛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붉은 청년 근위대 야영소에서 중학교 4학년 때 군사 훈련을 15일간 진행하고 마지막 날은 실탄 사격까지 했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그곳을 더 거슬러 올라가니 결혼해서 살던 동네가 보였습니다. 꿈결에도 보이는 내 자식 내 형제 이웃들이 떠올라 눈물이 하염없이 솟구쳤습니다. 날개라도 있으면 날아가서 안아 보고 얼굴 보며 이야기 나누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주체할 길이 없었습니다. 살기가 막막하여 뛰쳐나왔지만 다시 가고 싶은 정든 고향 땅입니다. 그 마음 달랠 길은 주님밖에 없어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올리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이제 강 너머 북한 땅을 따뜻한 시선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불쌍한 저 땅, 불쌍한 저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열어 주실 날이 분명히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라는 확신이 제 마음을 붙들어 주었습니다.

이동하는 곳마다 감시가 따라붙고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저희 앞서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현장학습 여정을 통해 쉬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 배달은 우리가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북한을 위하여 일하신 것이었습니다. 그 하나님께 순종하여 함께 간 팀원들의 모습 속에서도 북한의 문이 열릴 날이 멀지 않았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눈물로 한탄하며 살던 저를 웃게 하시고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 같은 사람을 자녀로 받아 주시고 고향을 지척에서 보게 해 주신 사랑과 은혜가 가득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북한에 주님의 나라를 세워 주시리라 믿습니다. 북한 백성을 구원해 주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탈북민 김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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