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을 두 번째 방문하고 몇 달 후 75권의 뉴톰슨 주석성경을 가져갔습니다. 넘겨줄 사람이 마땅치 않아 겁없이 조선그리스도교연맹에다 전화를 걸어 선물을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호텔 로비 뒷쪽 어두침침한 자리를 봐 두었던 터라 그리로 와서 세 가방을 가지고 가라고 일러 두었습니다. 방에서 30분 정도 초조하게 서성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서기장이었습니다. 그는 입술에 손을 대면서 말을 하지 말라는 시늉을 했습니다. 저는 “피곤한가? 헛소리를 들었나 봐. 바람이나 쐬러 나가야지.”라고 중얼거리며 문을 열고 나섰습니다. 서기장은 저를 엘리베이터로 끌고 가서는 “귀한 걸 가져오셨두만. 내 마음대로 써도 돼?”라고 물으셨습니다. 제가 “선물인데요. 마음대로 사용하셔요.”라고 답하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나도 무슨 선물이라도 드려야지.” 하며 서기장은 저를 봉고에 태우고 옆자리에 앉으셨습니다. “칠골교회가 공사 중이니 가서 보세.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그게 다일세. 나무로 창문을 해서 달았는데 미국에서 온 동포가 요즈음 누가 나무로 된 창문을 하느냐며 비용을 들여서 새시로 고쳐 다는 중일세.”라고 하셨습니다. 아담한 교회당이었습니다. 그는 몇몇 분과 미국에 다녀온 이야기를 꺼내며 “남조선 목사들이 우릴 용서하지 않았두만…. 우리가 이렇게 해가면서 교회를 지키려는 노력을 남조선 교회는 모르는 것 같아.”라며 눈물을 비쳤습니다. 그러고 나서 거의 7년이 지나도록 북한에 들어갈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뜻밖의 길이 열려 조선그리스도교연맹 강영섭 위원장과 연결이 되었습니다.
서기장은 그 사이에 세상을 떠나서 그때 배달한 성경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게 됐습니다. 저는 북한을 갈 때면 어김없이 책들을 가지고 갔습니다.
공항에서 뭐라고 욕지거리를 하면 “야, 이 사람들이 책을 봐야지. 그래야 남한 목사들과 대화가 되지.”라며 윽박질렀습니다. 그것이 통했습니다. 봉수교회당 옆에 있던 조선그리스도교연맹에 꽂힌 많은 책들이 제 손을 거쳤습니다.
저는 이전에 갖다 주었던 뉴톰슨 주석성경의 행방이 궁금해서 한 사람을 포섭했습니다. “몇 년 전에, 두꺼운 책 수십 권을 가져다 드렸는데 받으신 분이 세상을 떠나셨어….”라고 어렵사리 말을 꺼냈습니다. “찾지 말아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읽고 보고 있어. 꼭 봐야 할 사람들이 있어. 그런데 무슨 배짱으로 그렇게 많이…”그는 두리번거리며 조용히 들려주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 누굴까? 시골 구석의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버려지거나 태워버린 것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호텔에 전시해 놨던 <벤허>, <나사렛 예수> 영화 등등은 누가 봤을까? 왜 그런 일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오지 않는지 저로서는 궁금합니다. 여기 기록한 내용은 공개해도 될 만한 일입니다. 밝히지 않는, 아니 밝히지 못하는 내용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지금도 그 일을 해야 하거든요.
북한 선교에 필요한 게 뭐냐구요? 저에게 묻지 마시고 하나님께 물어보세요. 작은 것들도 있고, 아주 큰 것도 있습니다. 한번에 끝나는 일도 있지만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북한의 핍박받는 영혼들을 구하는 일에 삶 전체를 드리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