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콤특집2] 그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살려주신 하나님!(2019.08)

 

나는 함경북도 함흥집결소(감옥)에 갇혀 고통에 신음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처음 중국에 나와 일할 곳을 찾아 여기 저기 헤매던 나는 우연히 한국에서 온 선교사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분들은 집 짓는 목수 일을 하던 내게 복음을 전해 주었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나의 모든 것을 감싸 안아 주시며 품어 주셨다. 그러던 어느 날 선교사님들이 마련해 준 쉼터가 발각되면서 나는 강제북송을 당해 함흥집결소에 수감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짐승보다 못한 고문과 매질에 시달려야 했다.

 

하루는 간수가 나를 불러 땅을 파라고 시켰다. 먹지 못해 기운이 없는 상태에서 얼마간 파 내려 갔을 때, 가마니에 둘둘 만 무엇인가를 끌고 나와 나에게 묻으라고 했다. 그런데 손이 파닥이는 것이 보였다.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 아직 살아 있는 것 같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간수들이 “이 새끼 어디서 대들어”라며 사정없이 때렸다. 그렇게 몇 번 시신 묻는 일을 하고 있자니 ‘아! 나도 이러다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선교사들이 조건 없이 따뜻하게 대해 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들려주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를 끔찍이 사랑하고 용납해 주었던 선교사들을 다시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집결소에 수감된 지 6개월이 지났을 때 나는 허약(영양실조)으로 몸무게가 36kg까지 빠져 걸을 수조차 없게 되었다. 그런데 김정일의 생일을 맞아 중국에 갔다가 구속된 사람들을 풀어주라는 대사령이 내려졌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나는 “할렐루야!”라고 외쳤다. 나도 모르게 나온 소리에 놀라서 옆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데 누군가 구석에서 “아멘!”이라고 했다. 덜컥 겁이 났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무 일 없이 석방되도록 은혜를 베푸셨다.

 

호송원 둘이 나를 고향까지 데려다 주는 임무를 띠고 나를 앞세워 함흥역전까지 갔다. 그러나 굶주림으로 영양실조에 걸린 나는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어서 푹 쓰러졌다. 호송원들은 깜작 놀라 “이 새끼 죽으면 안 되는데… 쌀뜨물 얻어오라”라고 했다. 그 말은 귀에 들렸지만 몸은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는데 갑자기 중국에서 내가 선교사들에게 못되게 굴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들의 말을 듣지 않고, 돈을 벌려고 집을 지으며 거짓으로 예배드리고, 선교사들이 말씀을 전할 때 일부러 방해하고, 고의적으로 찬양 음을 틀리게 낸 못난 모습들이었다. 때늦은 후회와 함께 회개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내가 왜 그랬지? 다시 그분들을 만난다면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하나님을 찾았다.

 

 

그때 누군가 내 입에 쌀뜨물을 넣었다. 조금씩 의식이 돌아오는 와중에 머릿속에서는 자꾸만 하나님 생각이 났다. ‘하나님… 하나님이 나하고 함께 하시나?’라는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고는 “하나님, 이제 하나님이 보내준 사람들을 만나면 진짜 예배도 잘 드리고 찬양도 잘 하겠습니다”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호송원들은 의식이 돌아온 나를 역전에 두고 돌아갔다. 몸을 추스려서 발걸음을 떼는데 내 모습이 너무 기가 막혔다. 중국에 돈 벌러 갔는데 돈은 고사하고 산송장 같은 몰골로 집에 가자니 부모님 뵐 면목이 없었다. 다시 중국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감옥에서 만난 고향 친구와 함께 집 대신 두만강으로 향했다. 누가 봐도 깡마른 꽃제비의 모습으로 대낮에 두만강을 건너려고 서성거리니 아니나 다를까 경비를 서던 군인이 쫓아왔다. 나는 비틀비틀 뛰면서 속으로 “하나님, 우리 중국 무사히 가게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우리는 얼마 못 가서 경비병에게 붙잡혔다. 그런데 몰골이 어찌나 형편없었던지 경비병은 우리를 초소로 데려가서 밥을 주면서 “너희 중국 가려고 하는 거 아니지? 빨리 먹고 집으로 돌아가라”라고 했다. 하나님이 베푸신 기적이었다. 우리는 경비대가 주는 밥을 먹고 힘을 내서 중국으로 넘어왔다.

 

그렇게 무사히 중국 쪽 강변에 숨어 있다가 조선말 하는 사람을 찾아서 그 집에 들어가 전화기를 한 번만 쓰자고 사정했다. 처음에는 안 된다고 하더니 손을 싹싹 빌면서 친척을 찾으려고 한다고 했더니 전화를 사용할 수 있게 허락했다. 처음 나를 선교사들에게 데려다 주었던 모 권사에게 전화를 했다. 그 권사는 내 목소리를 듣더니 이내 울먹이는 목소리가 됐다.

 

 

“권사님, 선교사님들은 잘 계심까?”
“선교 센터가 발각되어 선교사님들은 모두 추방당하고, 탈북자들은 북한으로 잡혀 갔어. 다 죽은 줄만 알았는데… 살아와줘서 고맙다”
그 말을 듣는데 뜨거운 눈물이 두 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 ‘집결소에서 내가 산 채로 묻었던 그 사람들처럼 나도 죽을 수 있었는데, 그런 나를 하나님은 살려서 중국에까지 오게 하셨구나. 아, 여기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내가 살아 돌아오기를 기도했구나.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나를 살려주셨구나’ 하는 감사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그로부터 6시간 후, 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나 지극한 돌봄을 받고 몸을 완전히 회복해서 중국에 나온 북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하나님을 예배했다.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북한 땅에 흘러가기를 기도하며 그 날을 준비한다. 나를 만나 주시고 구속해 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북녘의 내 가족과 모든 백성들에게도 전해지는 ‘탈북행전이’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탈북민 정OO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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