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의 한 야외공원에서 펑펑 내리는 하얀 눈을 맞으며 예배를 드리는 장면의 사진이 2009년 12월 카타콤소식에 소개되었다.
정상적으로 비용을 지불하고 마련한 성전의 열쇠를 빼앗은 당국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의연히 둘러선 수많은 성도들이 목사의 설교를 듣고, 성가대원들의 손에 들려진 악보에 내린 눈이 녹아 물방울로 적셔진 가운데 울려 퍼지던 모습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눈에 선하다.
급기야 2011년 4월 야외에서 설교했던 목사와 몇몇 장로들이 가택연금을 당하였다.
가택연금 상태에 있는 그 교회의 진목사를 찾았을 때, 현관 앞 복도에는 두 개의 침대가 ‘ㄱ’자로 놓여 있고 그 곁에 의자 세 개가 놓여 있어, 공간이 비좁고 복잡했다. 그 곳에 사복 차림을 한 경찰이 앉아 있었다. 진목사는 현관 앞에 앉아 있던 경찰과 잠시 무슨 말을 나눈 후 현관문을 조금 열어 놓았다. 집에 손님이 찾아와도 완전히 문을 닫을 수 없으며, 경찰은 집안의 동태를 살피게 되어 있었다.
많이 힘든 모습일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가택연금 되기 전 폐결핵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정말 활기차고 건강한 모습이었다.
“가택연금이 시작된 지 7년 4개월이 지났습니다. 처음에는 금방이라도 풀려날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아주 빨리 지나간 느낌입니다. 지루하거나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느낌도 없고, 한 해 한 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빨리 지나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며, 그는 가택연금이 되던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2011년 4월 10일에 가택연금 되었습니다. 집안에 갇혀 한 발짝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바깥 세상과 교류하지 못하는 것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제 자신이 오그라드는 것 같고 끝없이 깊은 수렁 아래로 빠져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건강까지 악화되어, 어쩌다 아내가 지나가다 살짝 제 몸에 닿기만 해도 부서질 듯 아프고 괴로웠습니다. 나 스스로 느끼지 못했지만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것 같습니다.”
진목사는 그토록 자신을 힘들게 한 것은 “당국에서는 목자를 치면 양들이 흩어질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양들이 흩어지지 않으니까 양들을 직접 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자매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경제적인 활동을 하지 않으면 가족들이 당장 어려움에 처하였고, 또 어떤 자매는 남편이 믿지 않는데 갇혀 고난을 당하고, 또 다른 형제는 직장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어떤 형제는 어느 날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양들을 괴롭히는 일들이 몇 년 동안 계속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는 또 이 어려운 싸움을 시작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 당시 저희 교회는 200명, 150명, 100명 등 열두 처소에서 성도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처소가 많으니 제가 두 달에 한 번도 가기 힘들 정도로 교회가 성장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모두가 함께 할 예배당을 마련하기로 결단했습니다. 또 한편으로 이제 교회를 드러내고 사회에 복음적인 영향을 미칠 시기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예배할 수 있는 빌딩의 한 층을 예배당으로 사용하려고 현금을 주고 구입하고 공식적으로 교회 등록을 신청했습니다. 교회가 커지고 사역이 활성화되면서 우리 교회는 정부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성장했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이며, 누구도 이 교회를 빼앗아갈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해야만 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허락과 탄압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결국 정부는 탄압을 결정해 교회에 대한 핍박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하나님을 향한 강한 믿음과 결의, 그리고 시대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자 하는 책임감이 느껴졌다.
진목사는 교회가 탄압받는 과정에서 미친 영향을 계속하여 설명했다.
“가택연금이 있기 전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는데 갑자기 완전무장한 공안들 40~50명이 교회 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적어도 10개 부서에서 나온 공안들이 예배당을 둘러싸는데 단 한 사람도 미동하지 않고 계속 예배를 드렸습니다. 중국에서 정부의 탄압을 막을 사람이나 단체가 없을 정도로 국가권력이 막강합니다. 그런데 성도들의 당당한 태도에 오히려 공안들이 놀라 밖으로 나갔다가 예배를 마치자 들어와 성도들을 한 사람씩 조사했습니다. 나중에 이들 중 한 사람으로부터 듣게 된 사실인데 ‘의연하게 예배하는 사람들을 보며 겁나고 두렵더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거의 매 주일 야외에서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이 인근 100여 개 파출소에 잡혀갔습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이 파출소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상담해주고 기도해 주는 것을 본 공안들이 ‘너희 교회는 진정한 교회다’라고 했습니다. 산 위에 있는 도시가 숨겨지지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교회가 세상에 비추는 빛은 중국 정부도 감추지 못합니다.”
진목사는 목회자가 7년 4개월 동안 감금된 상태에서 지금 교회는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설명하였다.
“중국 정부가 교회 건물을 봉쇄하고 가택연금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예배와 사역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목자를 가두었지만 교회의 생명이 끊어지지 않았고 성도들에 대한 탄압이 계속되고 있는 중에도 지금 40여 개의 처소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매주 수요일에는 기도회, 매달 첫째 화요일에는 성찬식, 1년에 두 번 정도 세례식도 거행합니다. 교회 내 열 개 이상의 사역 부서도 주일 예배를 제외하고는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라고 하는 그의 말에, 어떻게 목사가 7년 4개월 동안 감금되어 있는데 교회 사역이 계속될 수 있느냐고 질문했더니 그는 당당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하나님께서 전 성도들을 훈련시켜 주셨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독립적으로 세워 양육하게 하셨지요. 교회는 목자 한 사람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건강하게 세워져서 하나님을 믿는 공동체로 자생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20년 동안 하나님 안에서 영적 전쟁을 통해 무장되었기에,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목사와 성도들을 향한 정부의 탄압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교회가 건강하게 지속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그는 “저는 목회하면서 교회에 목사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대신 리더들을 세워 그들의 영향력이 커지도록 지도자로 세우는 사역을 견지해 왔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성도들을 지도자화 한 것입니다. 제가 없어도 그들 안에서 사역이 가능하도록 양육해 왔습니다. 그러하기에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이 머리되시는 교회임을 고백하고 실천하는 성도들의 모습을 본 중국 교회에 작은 파동이 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핍박을 감내한 성도들은 신앙의 모범으로서 중국 교회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가 핍박을 받는 동안 다른 교회에 대한 핍박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수적으로 크게 성장한 교회들이 많아졌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교회적으로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가는 동안 개인적으로도 놀라운 변화가 있었음을 들려주었다.
“가택연금 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밖으로 나가려고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1년이 조금 지난 2012년 여름부터 저희가 사는 아파트 단지 내에 한하여 하루 두 시간씩 저를 감시하는 경찰이 동행하는 상태로 외출할 수 있도록 허락받았습니다. 밖으로 나온 순간, 집 안과 집 밖의 공기가 그렇게 다른 줄 몰랐습니다. 밖에 나온 것만으로도 무엇인가 억눌렸던 것이 풀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첫날부터 아파트 주위를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다리에 힘이 없어 휘청거려 천천히 걸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루하루 지나면서 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3km를 달리고 점점 거리를 늘려 많이 뛰는 날은 12km를 뛰었습니다. 달리는 동안 속에 쌓여 있던 울분이 터져 나오면서 기도로 변하였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폭우 속에서도 쉬지 않고 달리고 또 달리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제 등 뒤에 계신 하나님께서 든든하게 받쳐주시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 없이 밑으로 떨어지고 안으로 우그러들고, 끝없이 추락하다 더 이상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그 상태에서 ‘사람이 왜 사는가’와 같은 인간적인 질문을 거듭하며 가장 깊은 골짜기를 지나, 저를 끝까지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힘겨운 시간 속에서 자신을 이끌어주신 하나님의 신실함을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을, 그는 이렇게 설명 하였다.
“저는 설교하는데 한 번도 부담을 가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글을 쓰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었고 십자가였습니다. 그런데 가택연금이 되고 나서 지금까지 다섯 권의 책을 썼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처음 쓴 ‘산 위의 도시’는 2006년 교회 등록부터 시작해 교회로 세워지고 가택연금 직후까지의 내용입니다. 그 속편까지 썼습니다.
그리고 가택연금 후 5주년을 기념해 하박국의 노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책을 썼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책을 쓰는 동안 글을 쓰는 부담이 사라져 이제는 글을 쓰면서 자유함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 뒤로 한 달간 아가서를 읽고 묵상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놀라운 은혜와 감동을 쓴 ‘아가서의 사랑 이야기’를 출간하였습니다. 또한 교회 수련회에서 매년 가르쳤던 전인 치유 12과목에 대한 책을 정리해 책으로 출판했습니다. 책을 쓰다 보니 한 주가 책 한 장을 넘기듯이 빠르게 지나고 있습니다.”
갇히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글 쓰는 일을 통해 얻는 기쁨이 진목사의 얼굴표정에 가득했다. 이렇듯 자신을 통해 새로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전하는 진목사의 얼굴은 미소를 가득 머금고 감사와 기쁨이 넘쳐나 어린 아이처럼 해맑게 빛났다.
“2014년부터 야외에서 예배하는 성도들을 구류시켰습니다. 그 때 맘이 너무 힘들어 결단을 하고 하나님께 이런 상황을 해결해 주실 것을 아뢰며 21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첫날부터 정말 하나님이 힘을 주셔서 어렵지 않게 기도했습니다. 아내 외에는 문밖에 있는 경찰들도 금식하는 것을 몰랐습니다. 저를 보면 ‘얼굴이 수척해졌다’라고만 할 정도로 힘들지 않게 기도를 마쳤습니다. 저는 상황을 완전히 끝내고 정부로부터 교회 열쇠를 받고 싶은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성도들은 계속 잡혀 들어가 구류 당하고, 저의 가택연금도 풀리지 않았고, 교회 열쇠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문제는 그대로 있는데 하나님은 저와 성도들이 감당할 만한 힘을 주시더라고요. 하나님의 생각과 저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알기에 저는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기도했는데, 7년 4개월 동안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감당할 만한 힘과 능력을 주신다고 고백하는 그의 얼굴은 환하고 평안했다. 그 모습을 보며 “감옥에 갇혔으나 나는 하나님 안에서 자유하다”고 힘주어 강조했던 사도 바울의 고백이 떠올랐다. 분명 갇힌 자이나 하나님 안에서 자유함을 삶으로 증언하는 진목사의 모습이었다.
“중국에는 민간단체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두 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단체나 국가도 통제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사람이 고통스러우면 눈물을 흘리는데, 너무나 고통이 심하면 눈물이 나지 않습니다. 저는 몇 년 동안 눈물이 나지 않는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얼마나 고통이 심했으면 눈물이 나지 않을까?
자신이 경험한 고통에 대해 적합한 단어를 찾고자 몇 번이나 말을 더듬었다.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진목사는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꾸고 있다. 바로 중국 교회와 선교 현장을 잇는 선교의 고속도로를 놓고자 하는 꿈이었다.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앞에 가기 전에 중국 교회와 선교 현장을 잇는 다리가 되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어쩌면 지금까지의 연단이 선교를 대비한 훈련일지도 모르겠다고 고백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길이 자신의 생각과는 달랐기에 쉽사리 앞으로의 일을 예단하지는 않지만, 순간순간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을 늘 신뢰한다.
특별히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체험한 이야기 중,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주신 축복에 대해 들려주었다. 교회가 핍박 받고 가택연금 상황에서 두 명의 자녀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훌륭하게 성장했다. 말씀으로 자라난 것은 물론이고, 미국의 크리스천 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학업에 매진하고 있다. 이를 본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행하신 다섯 가지 기적 중에 하나는, 목사님의 자녀들에게 일어난 기적입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자녀들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크고 놀랍다고 고백하는 그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가득했다.
교회의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당당하게 밝힘으로 핍박받아 갇혔으나 하나님 안에서 자유하는 기쁨과 평안을 온 몸으로 누리고, 문제가 있으나 그 문제와 직면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였고, 글 쓰는 것이 십자가였으나 갇힌 중에 글 쓰는 즐거움을 알게 하사 열매 맺게 하시는 하나님의 풍성함을 기뻐하고, 도리어 하나님과 함께 선교의 고속도로를 놓고자 꿈을 꾸는 그는 진정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2018년 우리 또한 어떤 형편과 상황에서도 하나님 안에서 이처럼 자유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형제자매님 주안에서 평안을 전합니다!
교회는 2011년 4월 10일 야외 예배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7주년을 맞이했습니다. 7년을 돌이켜 보면 우리 자신의 힘으로 오늘까지 버틸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으며,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음을 믿습니다. 지난 7년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와 도움을 구하며 실내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교회장소가 더 빨리 마련되어 그 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고 찬양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 우리는 아직도 하나님께서 교회를 어떻게 인도해 가실지 명확하게 모릅니다.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명확하게 드러날 때 까지 현재의 상태로 유지할 것입니다.
저는 담임목사로 25년을 섬겨왔습니다. 그러나 7년 동안 자택에 감금돼 있어, 형제자매들을 돌볼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제가 교회 담임목사를 감당하는 것에 더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담임목사직을 사임하고 하나님께서 2년 전부터 부담을 주시는 선교사역을 감당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교회 현재의 사역과 이후의 사역에 긍정적인 측면이 많습니다. 앞으로 섬김 중심의 신학교육이 더욱 강화될 것입니다.
새로운 종교 사무 조례가 시행되면, 교회가 새로운 싸움에 직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야외 예배와 교회건물 문제에 대해 우리는 계속 하나님께 맡길 뿐입니다. 과거 교회가 걸어온 길은, 이 두 가지 문제의 해결은 우리 누군가 혹은 몇 개 교회 지도자들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회의 사역자들을 계속 이끌어 가시며, 언젠가 시기가 무르익을 때 문제 해결 방법과 길들을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 특별히 교회 건물 관련된 사역에 대해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우리들 사이에 은혜를 베풀어 주심을 믿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계속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서 이루실 결과를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은혜의 행하심에 우리 모두 끝까지 잘 감당해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각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에 인도함 가운데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친히 인도하시며 형제자매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길 기도합니다!
2018년 4월 24일
■ 이 편지는 탄압을 받고 있는 진목사가 보내온 소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