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북한 사람들을 만났어도 이런 일은 처음임다. 이런 아줌마는 처음 봤슴다. 본인 쓰라고 돈을 줬더니 아니, 자기 주머니에 안 넣고 봉투째 다른 사람 손에 쥐어주는 거 아님까? 봉투를 받은 사람은 ‘내가 이 빚을 어떻게 갚겠냐’며 눈물을 펑펑 쏟았슴다.” 북한에 심부름을 다녀온 일꾼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꺼냈습니다.
“그 돈을 다요?” 사역자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말도 마시오. 그 집에 갔더니 창고에 웬 가족이 더부살이를 하고 있었슴다. 형편을 듣자 하니까, 집 없이 오갈 데 없는 가족인데 그 사람들을 거둬서 임시로 창고에 살게 한 검다. 그런데 마침 돈이 생기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이걸로 셋방이라도 얻으라며 그 가족에게 내밀지 뭡니까? 아무리 사정이 딱해도 그렇지….”
사역자는 내색을 안 했지만 일꾼의 이야기에 얽힌 행간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머릿속에 전후 사정이 그려지면서 그 성도가 왜 그랬는지를 알 것 같았습니다.
북한에서는 한국과 같은 방식으로는 전도를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이야기를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찬양이나 예배, 기도를 함께하자고 권유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복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웃을 사랑하고자 애씁니다. 아니, 성령의 강권하심으로 이웃과 나누지 않고는 못 견디는 마음이 됩니다.
일꾼이 방문한 북한 성도가 집 없는 가족에게 적잖은 사역비 전체를 흘려 보낸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입니다.
“다른 집은 어떻던가요?”
생각에 잠겼던 사역자가 일꾼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웃 동네로도 갔는데 그 집은 지난번 준 돈으로 본인 가정에 필요한 것들을 사서 비축하고 나머지 금액으로 쌀과 기름을 사서 사람들에게 조금씩 줬다고 함다. 행여라도 나눠주다가 감시 대상이 되면 어쩌나 근심했는데 다행히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남을 퍼 주는데 이렇게 마음이 상쾌할 수가 없다며 기뻐했슴다.”
“쓰러진 할머니는 어떠시대요?”
“아, 혼자 사는 집에서 넘어져서 방치돼 죽어간다던 할머니 말임까? 많이 회복됐다고 들었슴다. 그분이 시장에서 약을 사서 꼬박 꼬박 챙겨 드리고, 매일 죽이라도 쒀서 드시게 했더니 막혔던 말문이 열리고 걸어다니기도 하신담다. 할머니에게 아버지와 삼촌이 도와주셨다고 큰 은혜를 입었다고 이야기하면 머리를 숙이고 조용히 듣고 있다가 눈물을 주르르 흘린다고 함다.”
“다행이군요. 또 다른 말은….”
“한 달에 한 번 자기 집에서 6명이 만나는데 죽어도 변하지 않을 거라고 했슴다. 굳센 사람들이니 근심하지 말라고도 했슴다.
일꾼이 한 말의 의미는 확고하게 믿음을 고백하는 성도 6명이 교회로 모여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가난해도 순수하게 하나님을 따르는 북한 성도들의 기도를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으로 응답하십니다. 또한 성도들이 아낌없이 펴는 구제의 손을 사용하셔서 믿는 자의 수가 더해지고 교회가 세워지게 하십니다. 절대 빈곤에 시달리는 북한에서 복음은 구제라는 문을 통해 전파됩니다. 당장에 먹을 것이 없어 굶고 있는 사람에게 말로만 “따뜻하게 입으세요. 배부르게 드세요.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하는 것은 공허한 외침에 불과합니다.
북한 성도들은 자신의 작은 것을 어려운 이웃과 나누고 도와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합니다.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인 구제는 살 소망을 잃고 주저앉은 이들의 마음을 녹여 하나님과 복음을 향해 활짝 열리게 합니다.
북한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북한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